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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Aug 17. 2020

구호와 본성의 대립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중국의 히트 작가 위화가 쓴 <허삼관 매혈기>, 중국 소설은 처음이었다.



<허삼관 매혈기> 세 줄 요약

1. 막장극과 신파의 중간이지만 몰입 있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재밌다.

2. 중국인이 왜 지금의 모습인지(비난 아님) 어렴풋이 알 수 있다.

3. 사람들은 모두 구호 아래 있다. 그러나 결국 인간 본성에 수렴한다.



1. 재밌다 (구체적인 묘사와 치밀한 장치)

- 허삼관이 피를 팔러 가서 어떤 모습인지, 나와서 뭘 어떻게 먹는지 눈에 훤히 그려질 정도로 묘사가 구체적이고 찰지다. 가끔씩 쓰이는 비속어들이 오히려 현실감 있게 느껴진다. 하지만 굳이 욕을 섞는 듯한 느낌도 없진 않았다.(오히려 집중이 깨지는 느낌)


- 하소용과 허옥란, 일락이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납득이 가면서도 극적이라는 생각. 일락이의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두고 왔다 갔다 하면서 쌓인 사건들이 결국 나중에 사건의 실마리들이 되는 서사가 치밀하다고 느낀다. 앞에서부터 뒤에까지 버릴 만한 사건들 없이 간결하게 진행되고 빠른 호흡으로 전개된다.


- 허삼관의 캐릭터 자체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이 든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아마 작가의 의도를 담으면서 캐릭터가 여러 역할을 소화해야 하니까 입체적인 인물을 넘어서서 돌아이 같은 인물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반대로 그래서 더 가짜 같다.(읽으면서 어이없음)


- 허삼관과 허옥란 둘 중 누가 더 읽는 사람을 빡치게 하는가로 배틀하는 듯하다. 허삼관은 일락이와 허옥란을 너무 푸대접할 때. 허옥란은 집안 살림 내팽개치고 내깔리는 대로 할 건 다하면서 지낼 때. 사실 세 아들이 그렇게 자란 게 천운이다. 허삼관 허옥란만 빼고 모든 등장인물들이 정상이다.


2. 중국인은 왜 지금의 모습인가 (중국의 처절한 역사와 지금 모습의 상관관계)

- 읽으면서 염상섭의 <삼대>가 생각났다. <삼대>는 일제 식민기 시대와 민주화 운동을 관통하는 한국의 역사를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을 통해 드러낸다면, <허삼관 매혈기>는 대약진과 문화 대혁명을 관통하는 중국의 역사를 한 가족을 통해 드러낸다. 사회를 묘사할 때 가족으로 그 문제를 투영시켜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더 극적으로 만드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 잘못된 일이지만, 사실 중국인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이 내 편견이고 차별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고, 결국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는 진부하지만 나에게만큼은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됐다.


- 미-소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소련의 버림을 받은 중국은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변해 잘 살아 보기 위해 대약진이라는 구호 아래 인민공사를 설립하고 농촌 청년대를 운영하며 막대한 인적 자원을 혹사시켜 공업국가 건설 자본을 축적하고자 했다. 농촌 청년대에 자원한(끌려간) 사람들은 영혼이 갈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많은 희생과 반대 의견을 낳은 대약진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농촌 청년대


- 모택동은 이런 여론을 타개하고, 다시 지지 세력을 얻기 위해 문화 대혁명이라는 구호를 새롭게 내세웠다. 모택동 빼고 모든 기득권에게 도전할 수 있었으며 모든 봉건 잔재와 자본주의를 박살 내버리기 위해 거리로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골목마다 대자보가 붙고, 대자보에 마녀가 선정되기만 하면 진위를 불문하고 일단 끌려 나와 사상검증 대상이 되거나 몽둥이찜질 대상이 되거나 심하면 죽기도 했다. 작품 속에서도 허옥란이 과거 하소용과 불륜 관계였다는 사실이 대자보를 통해 폭로되며 사람들의 시선+구호에 세뇌된 세 아들에게 마저 ‘화냥년’이라는 욕을 얻어먹는 다소 충격적이고 씁쓸한 내용이 있다.

문화 대혁명의 그림자


- 문화 대혁명은 모택동의 지지 세력을 얻기 위한 캠페인으로 시작했지만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이때 그동안 쌓아 올린 중국의 경제적 가치 10년 치를 까먹게 됐다고 한다. 중국의 위인 공자의 묘까지 봉건 잔재 타파라는 미명 아래 훼손될 정도였다. 허삼관 네 가족도 이때 많이 피폐해진다. 그리고 이때 허삼관과 허옥란 그리고 세 아들이 더 애틋해지면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가족 드라마가 펼쳐진다. 특히 허삼관의 도시락 사랑, 후반부의 매혈 여정은 잊을 수 없다.


- 우리가 시쳇말로 북한 사람들이 세뇌됐다고 하는 것처럼, 사실은 중국도 거대한 구호 아랫사람들이 오랜 시기를 보내면서 그 구호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가끔 그런 성향을 보이지만, 중국인들도 국수주의적인 경향이 있고 자기들만 공유하는 아픔과 자부심이 있다. 우리나라도 식민지 시대와 한강의 기적을 거치며 이런 성향을 드러내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결국 개개인의 사상이 어떻다 하는 것보다 생각을 공유하는 집단(국가나 사회, 소속 집단 등등)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하는 것이 개인의 생각에 더 많은 파이를 차지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가 아니라, 뿌리가 먼저냐 이파리가 먼저냐와 비슷한 이치인 것 같다.


- 앞에서도 말했지만 중국인도 우리나라 국민과 똑같은 사람이다. 구호 아래 영향을 받고, 또 국가의 이데올로기에 많은 피해를 받으면서 홀로코스트까지 당했다.


- 웃긴 건 그 많은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민주주의를 질식시킨 모택동이 물러나고, 개혁과 개방을 주장한 등소평도 나중에 천안문 사건을 통해 사람들을 학살하고 ‘폭동이 진압됐다’고 말했다. 결국 개혁과 개방을 주장한 지도자도 공산주의 구호의 벽을 끝까지 넘진 못 했다.


3. 사실 사람들은 모두 구호 아래 있다. 그러나 결국 인간 본성에 수렴한다.

- 앞에서 얘기한 것들이긴 한데, 중국인이든 미국인이든 북한인이든 한국인이든 구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사회에 영향을 받고 시대정신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그토록 각광받고 또 몰락하게 된 이유는 구호 아래서 가장 뜨거웠으며, 또 그만큼 인간 본성에 어긋나는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밝힐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공산주의는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의 존속이 중요했으며, 구호는 노동자가 주인공이지만 사실은 지도자가 노동자의 위에 있는 사기나 다름없는 사상이다. 물론 이론적인 공산주의는 평등이지만, 지도자가 독재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고 실제로 유혹을 뿌리쳐서 공산주의를 성공시킨 사례도 없다. 인간은 자유롭기를 원한다. 공산주의 지도자가 자유롭고 싶어 하는 것처럼, 프롤레타리아도 자유롭고 싶긴 매한가지다. 사회는 점점 인간 본성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 민주주의는 이제 독재 정권인 북한의 시장 바닥에도 스며들고 있다. 허삼관이 그토록 치열한 대약진과 문화 대혁명에 철저히 굴복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저항하는 이유도 결국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인간 본성이 꼭 자유만을 원한다는 것은 아님)


- 지금 우리는 어떤 구호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누구는 포스트모더니즘, 누구는 물질만능주의라고 한다. 내 생각은 김 빠지지만 ‘알 수 없다’다. 조선 당시 유교가 법이었던 시대에 야자타임 하고 염색하는 일을 상상해볼 수 없듯이, 우리가 영향받는 구호도 후세에서 내려다볼 것이다. 굳이 굳이 구호를 생각해본다면, 돈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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