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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Dec 24. 2021

샤워부스에 바다가 있다면

손뼉 치는 기계로 살다가

문득 헛웃음이 나온다.

무슨 상관인데.


사람들은 마음에 구멍이 생기면

산으로 바다로 떠난다.

거기 가면 뭐가 있는데.

구멍 난 마음은 텅텅 비어서

바람도 잘 들고 비도 잘 샌다.


스페인에서 온 안젤라의 얘기는

나와 전혀 상관없지만

안젤라가 스페인으로 떠난 이유는

나와 비슷했다.

땅이 떠내려갈 정도로 비가

많이 오던 날이랬다.


2016년 겨울엔 나도 안젤라 같았다.

키득키득 웃고 있었지만

비행기에서 사진도 찍었지만

마음엔 바람이 들고 비가 샜다.


샤워부스에 샤워기가 아니라

바다가 있다면 어떨까.

나를 씻기는 일은 이젠 시원하지 않다.

바다가 나를 씻겨준다면

얼마나 시원할까.


전공 수업에서 J가 한 말이 가끔 생각난다.

사람의 뒤통수에 눈이 하나 더 달렸다면

아마 사람들의 사유방식은 바뀌었을 거야.

나도 지중해가 있는 대륙을 걸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지평선이 보이는 곳에 살면

더 여유로울까.


비가 억수로 많이 내리는

새벽에 땅이 떠내려갈 정도로

흘러가는 유리병 같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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