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배춧값이 폭등했단다.
4인 가족 기준 김장 비용이 작년 대비 8%가 올라서 33만 원이 됐다나.
밭둑마다 된서리가 내렸는지, 배추도 정도 밭에서 바늘 찾기 격이다.
정신없는 서리가 물러가고 정신 차리니 12월.
드라마 몇 편 쓴 것 같은데, 다시 보면 전과 다르지 않은 나날이다.
몇 인간관계가 정리되기도 하고, 생기기도 했다.
할아버지 고구마밭에서 바랭이들을 솎아냈던 일이 떠오른다.
어떤 놈이 고구마순이고 어떤 놈이 바랭이인지는 가까이 가보아야 아는 법이다.
그래도 고구마들은 서리가 무섭지, 고독사 무서워할 일은 없겠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시인 J가 말했었다.
그럼 가는 건요? 빼빼 말라 우리 할아버지 같은 J에게 다시 물어보고 싶다.
어릴 때 친했던 친구들이 멀어져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바랭이를 뽑을 때의 무의식과 직감이 인간관계에도 적용될까.
12월엔 그런 생각이 한 번씩 든다.
'알아서 잘 커', 이젠 없는 사람의 밭 걱정에 할머니가 한 마디 한다.
아뿔싸!
내 농사나 걱정해야지.
지금의 나라면, 아니 지금의 내가 아니면 작품을 써내지 못할 것 같은 직감.
'이 정도라면…'하는 작품을 써내겠다고 다짐한 지가 어느덧 1년이 되어간다.
된서리가 내려서 포기, 바랭이가 껴서 포기,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포기.
포기할 핑계 찾기에 도가 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는다.
귀여운 텃밭이 생겨 신나는 참이다.
밭에서 나는 푸른 순들이 조잘댄다. 연필을 들고 하루키 문장을 음미하며 멈춘다.
마침 새어 나오는 Fourplay의 "More Than a Dream".
텃밭이 고맙다고 인사한다.
섣달에도 밭 갈 날이 있다.
새벽같이 나갔던 할아버지 모습을 떠올린다.
갈고, 솎고, 엎고, 뽑고, 밭둑마다 정신없지만,
그래, 배춧값은 폭등했다지만,
김장은 계속된다.
'알아서 잘 커' 할머니 한 마디가 입 주위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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