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일 Jan 09. 2022

라싸의 강아지와 고양이

 매년 새해가 될 때마다 무드가 바뀐다. 올해는 ‘어찌 됐든 새해가 됐네’싶은 심정이다. 겉보기에 멀쩡했던 작년을 뭉개고 넘어가니 새해부터 탈이 나기 시작한다. 새해 채비를 제대로 하라는 계시가 분명하다.

 자동조종 모드 같았던 패턴 한 구석이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멈춰버렸다. 그 무렵부터 내심 생각하고 있던 정면으로 마주 보기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생존본능에 가까웠던 구직 활동부터 회사 생활까지. 안정기에 접어드니 또 청개구리 심보가 도진다.


 친구와 같이 탄 택시에는 시인이 운전을 하고 있었다. 두서없는 말들이 오고 가고 탄성도 탄식도 가끔씩 새 나왔지만 내리고 나니 모두 잊어버렸다. Art for Art’s Sake 한 문장 빼고.

 은퇴한 운동선수의 반사신경 같은 게 아니라 사람의 행동이 생각보다 먼저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도 모르게, 그 말처럼 도피성 가득한 말은 없는 것 같다. 무의식도 의식일까. 이 순간 올리버 색스의 임상의학 보고서가 절실하다.


 우연히 보게  다큐 차마고도를 보며 생각해본다. 끝도 없이 펼쳐진 좁은 길을 따라 고비를 넘는 사람들. 오체투지로 황량한 마방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까. 차마 쓰기 부끄러운  가지 단어들을 새삼 다시 떠올려본다. 가끔씩은 선택 많은 삶이 고단도 하다.

 돈을 꼭 많이 벌겠다고 다짐하는 친구들이 늘었다. 재작년 공부 시간에 이 시대 사조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지나고 봐야 알죠’라는 대답을 끊고 들어온 ‘돈이죠 뭐’가 가끔 생각난다. 돈 좋지. 내 염세주의 코스프레도 맨날 욕먹으면서 많이 길들여졌다.


 합정의 자주 가던 미용실에 오랜만에 들렀다. 예전에 좋아하던 머리를 다시 하고, 또 직전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던 내 기저를 가늠해본다. 생존본능 같았던 구직활동에 비할 바 아니지만 같은 맥락이다. 미용실에 한 시간만 투자했으면 애초에 편했을 일을.


 미용실 바닥에 나란히 누운 강아지와 고양이. 강아지는 심심하다고, 고양이는 배고프다고 운다. 따듯한 방안에 사는 쟤네도 차마고도에서는 달라질까. 끝도 없이 펼쳐진 좁은 길을 따라 오체투지로 뛰어들까.




ⓒ 커버, KBS <차마고도>

작가의 이전글 샤워부스에 바다가 있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