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새해가 될 때마다 무드가 바뀐다. 올해는 ‘어찌 됐든 새해가 됐네’싶은 심정이다. 겉보기에 멀쩡했던 작년을 뭉개고 넘어가니 새해부터 탈이 나기 시작한다. 새해 채비를 제대로 하라는 계시가 분명하다.
자동조종 모드 같았던 패턴 한 구석이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멈춰버렸다. 그 무렵부터 내심 생각하고 있던 정면으로 마주 보기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생존본능에 가까웠던 구직 활동부터 회사 생활까지. 안정기에 접어드니 또 청개구리 심보가 도진다.
친구와 같이 탄 택시에는 시인이 운전을 하고 있었다. 두서없는 말들이 오고 가고 탄성도 탄식도 가끔씩 새 나왔지만 내리고 나니 모두 잊어버렸다. Art for Art’s Sake 한 문장 빼고.
은퇴한 운동선수의 반사신경 같은 게 아니라 사람의 행동이 생각보다 먼저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도 모르게, 그 말처럼 도피성 가득한 말은 없는 것 같다. 무의식도 의식일까. 이 순간 올리버 색스의 임상의학 보고서가 절실하다.
우연히 보게 된 다큐 차마고도를 보며 생각해본다. 끝도 없이 펼쳐진 좁은 길을 따라 고비를 넘는 사람들. 오체투지로 황량한 마방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까. 차마 쓰기 부끄러운 몇 가지 단어들을 새삼 다시 떠올려본다. 가끔씩은 선택 많은 삶이 고단도 하다.
돈을 꼭 많이 벌겠다고 다짐하는 친구들이 늘었다. 재작년 공부 시간에 이 시대 사조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지나고 봐야 알죠’라는 대답을 끊고 들어온 ‘돈이죠 뭐’가 가끔 생각난다. 돈 좋지. 내 염세주의 코스프레도 맨날 욕먹으면서 많이 길들여졌다.
합정의 자주 가던 미용실에 오랜만에 들렀다. 예전에 좋아하던 머리를 다시 하고, 또 직전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던 내 기저를 가늠해본다. 생존본능 같았던 구직활동에 비할 바 아니지만 같은 맥락이다. 미용실에 한 시간만 투자했으면 애초에 편했을 일을.
미용실 바닥에 나란히 누운 강아지와 고양이. 강아지는 심심하다고, 고양이는 배고프다고 운다. 따듯한 방안에 사는 쟤네도 차마고도에서는 달라질까. 끝도 없이 펼쳐진 좁은 길을 따라 오체투지로 뛰어들까.
ⓒ 커버, KBS <차마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