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같이 일하고 있는 J에게 한 끼 식사와 함께 편지가 왔다.
"승일아, 레토르트 식품으로 나의 마음을 전할 수는 없지만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네가 우리 팀원이어서 행복하다.
왜냐하면, 넌 공감을 잘해 준다. 그리고 이해도 잘해 주고.
때로는 진지하다. 어찌나 진지한지 교수님 같기도 하다.
하지만 부드럽고 또 따뜻해서 네가 하는 말에서는 진심이 느껴진다.
일을 할 때는 어찌나 몰입하는지.
나는 네가 행복하면 좋겠다. 너의 행복의 조건은 뭘까?
내가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네가 우리와 함께 성장하면서,
또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
데워 먹다가 데이지 말고,
네 마음에 평화와 희망과 사랑이 가득하길 바랄게.
널 존중하고 아끼는 J가"
평소 함께 있는 게 불편한 J지만,
그날 J가 보낸 한 끼 식사와 편지에 눈물이 났다.
고맙기도, 서럽기도, 씁쓸하기도, 희미하게 기쁘기도.
길게 살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게 사는 맛 중에 하나 아닐까. 하는 어렴풋한 생각과 함께.
산책을 했다.
자주 가는 시민의 숲에 가지 않고 개방된 어느 학교 운동장과 공원을 하염없이 빙빙 돌았다.
설악초, 달맞이꽃, 옥잠화, 삼나무 …
어느 꽃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어느 나무에는 내가 기억하는 추억들이,
어느 벤치에는 내가 못 해 본 꿈들이,
텅 빈 운동장에는 해야 하는 일들의 괴로움이.
J에게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한 지 일주일이 지난 날이었다.
"승일이가 어려운 의사를 전해 왔습니다"
이어지는 J와 동료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점점 식은땀이 났다.
'내가 원하던 것이 이런 것이었을까,
이건 아닌데 …, 이건 아닌데…'
전화기 밖으로 따끔하던 아빠의 잔소리보다,
내가 정면으로 마주 보지 못 한 앞날이 무서웠다.
산다는 건 무엇일까?
이젠 이 질문을 되뇌는 이유가 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도.
"형, 무슨 일이야"
"저는 그만두겠다고 네 번이나 말했어요"
"야, 옆 팀에 Y는 잠적한 적도 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힘들면 언제든지 연락해! 커피 마시자"
"나 버리고 어디 가려고"
"그냥 해프닝일 뿐이야"
"미안하다는 생각도 드네, 미안해"
"넌 언제 나가도 이상하지 않았어, 너처럼 잘하는 애가 여기 있기엔 아깝지"
…
계획 대로라면 난 내일 열 시에 일어나도, 열한 시에 일어나도 된다.
하지만 난 내일도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난다.
다음 주에 할 일들, 다음 달에 계획된 일도, 그리고 내년에도.
7을 많이 본 날에는 바람이 되기로 결심하고,
4를 많이 본 날에는 잔돌이 되기로 결심한다.
7과 4 중 어떤 숫자가 더 많은지 모르겠다.
그래서, 난 바람도 됐다가 잔돌도 되었다.
오늘 본 영화에서,
"사람은 뭘 먹을 때 거짓말하기 힘들대요"
오늘은 국수를 먹었다. 김치도.
국수와 김치를 먹고 또 산책했다.
J가 보낸 레토르트 음식도, 내가 사 먹은 국수도,
먹다 보면 내 진심을 숨기기 어려워진다.
오늘도 밥을 먹고, 내일도 밥을 먹는다.
매일 거짓말하고, 매일 들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