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란 Jun 06. 2021

인어공주

제주 이어도 공주-안데르센창작 공모전

동화에 들어가는 그림은 그려 왔지만, 동화를 직접 써 보기는 처음이라... 왠지 쑥스러운 생각에

글을 쓴 것은 올리지 못했는데 올려봅니다.

제주에 살고 있는 것도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평범함을 싫어하고 즉흥적이고 모험을 좋아하는

무엇보다도 사랑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나 자신이 이어도의 인어 공주가 되어, 제주의 신화 느낌이 나는 글로 재창작해 보았습니다.

이번 응모는 삽화 부분이라 글과 그림의 글만 올렸었는데... 너무 긴 글이 삽화에 방해가 될까 봐요.

덧붙여서 올려 봅니다.

처음 쓰는 글이니 이해하시고 읽어 봐 주세요


인어공주 원고


나는 인어공주입니다.

제주도에서 넘실거리는 검푸른 파도를 구천구백아흔아홉번을 넘고 따가운 햇빛으로 눈이 보이지 않게 될 때쯤 하늘과 땅 사이의 색색의 안개가 피어오르는 곳인 이어도에서  살고 있어요. 


이어도는 신비로운 곳이랍니다.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먹을 것이 줄어들지 않고 늙지도 죽지도 않고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꽃들과 과일들이 만발하고 희귀한 동식물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어요. 항상 신비로운 향기가 섬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언니들은 연꽃들이 가득한 탕에서 헤엄을 치며 놀기도 하고 곱게 단장하고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 얘기에 까르르 웃으며 수다를 떨고 있어요.

아무런 걱정도 찾아볼 수 없는 여기는 정말 완벽한 곳이에요. 

    

하지만 뭔가 빠진 것 같고 재미가 없어요.

여자들만 있어서 그럴까요.

남풍이 불어올 때 아기들이 생겨나는데, 사내아기들은 모두 무쇠함에 태워서 바다에 띄워

인간세상으로 보내 버린답니다. 

    

인간세상은 아주 흥미로운 거 같아요.

어머니가 알면 아주 혼찌검이 날 테지만, 몰래 인간들이 배를 타고 지나가는 것을 

숨어서 본 적들이 있어요. 

    

하늘은 새파랗고 바다는 에메랄드빛 비단을 펼쳐 놓은 것처럼 잔잔한 날, 봄꽃 향기에

취한 나는 나도 모른 사이에 인간 세상에 나오게 되었어요.

날치들이 날아다니며 반짝반짝 빛을 내어 응원을 해주고 돌고래들이 노래를 불러주었답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거 같아 가슴이 두근거리고 볼이 상기되었어요.

     

그때였습니다.

말을 가득 실은 배가 다가왔어요.

뱃머리에 달처럼 환한 얼굴의 사내가 보였습니다.

우뚝한 콧날에 눈 속에 별이 있는 듯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 남자가 나를 본 듯했어요.

     

얼른 바위 뒤에 숨어 엿보고 있을 때, 돌연 바다가 검은 구름에 덮이면서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제주 바다의 변덕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거든요.

배가 마치 나뭇잎처럼 흔들리더니 말들과 함께 사람들이 바다로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그 사내도 빠진 것 같아요.  

   

보이 지를 않아요.

바닷속으로 들어가 찾아보기 시작합니다.

아, 너무 늦은 거 같아요.

겨우 사내를 찾아내 데리고 나왔을 땐, 이미 얼굴은 백지장 같고 입술은 파랬고

팔이 축 쳐졌습니다.

어쩌지....  

   

서천꽃밭에는 살 오를 꽃, 뼈 오를 꽃, 도환생꽃 등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꽃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 세상에 잘못 개입하면 크게 벌을 받을지도 몰라요.

그 남자의 길고 짙은 눈썹과 단정한 입매를 보다가 결심을 했어요.

서천꽃밭을 관리하는 꽃감관 할락궁이의 눈을 피해 꽃들을 훔쳐다 그를 살렸습니다. 

    

달이 두 번 뜰 때까지, 그 사내는 의식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부드러운 밤바람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마을 사람들의 소리가 가까워질 때

슬며시 눈을 떴습니다.

사람들 눈에 뜨이면 안 되기 때문에, 내 손을 놓지 않는 사내를 뒤로 한 채

조용히 물속으로 헤엄쳐 들어갔습니다.

     

이어도로 돌아왔을 때, 상상 그 이상으로 난리가 났습니다.

서천 꽃밭의 꽃을 훔쳐 인산의 생과 사에 관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천지왕의 분노를 어머니도 어찌할 수 없었어요.


결국 저는 선택을 해야 했어요.     

이어도의 깊고 깊고 어두운 곳,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심해어들만 가끔 보일 뿐인 저 바다 밑에 갇히느냐, 아니면 인간이 되어 인간 세상으로 가느냐.

     

난 사실 슬그머니 기뻤어요.

인간이 되어 인간세상으로 간다는 것이.

제가 바라는 일이었거든요.

그리고 내가 구해낸 그 사내도 다시 볼 수 있겠단 기대감에 설레기까지 했어요.

하지만 어머니와 언니들이 너무 슬퍼했기 때문에 좋은 척하지는 못했어요.


말로는 위로를 하지만 은근 고소해하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나처럼 신나는 모험도 할 줄 모르고

작은 세상에 갇혀 사는 친구들이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재미없고 무의미한 삶이람!

     

난 아무것도 없이 빈 몸으로 인간 세상에 보내졌습니다.

보름달이 환하게 뜨고 별이 하늘에 총총 박힌 밤이었어요.

동네 개들이 컹컹 짖었어요.     

어디로 가야 하나


일단 오늘은 오래된 벚꽃 나무 위로 올라가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어요.

무섭기도 했지만 너무나도 신나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기대로  빙그레 웃으며 잠이 들었어요.     

꿈속에서 그 사내를 만나고, 내가 그를 구해줬다고 마을 잔치가 벌어지고...

그 사내가 나를 향해 웃으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침 새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아 너무 아름다운 아침이었어요.

내가 너무너무 바라던. 

    

아주 커다란 팽나무 있는 마을 어귀에 다다랐을 때였어요.

사내아이 둘이서 뭔가를 열심히 돌리고 있었어요.

알록달록 색칠도 되어 있고 돌아가면 다른 색으로도 변하고

바닷속 해초 색깔 같기도 했어요.

“ 이건 무엇이니?”

놀던 아이들이 나를 올려다보더니

“ 와 팽이도 모르는 이상한 할머니다”라고 말하지 뭐예요.

‘할머니....?’

‘할머니가 도대체 뭐람...’  

   

참 이상해요.

여기 사람들은 나를 모두 할머니라고 불렀어요.

하지만 모두들 친절하게 나를 대했습니다.  

   

언니들처럼 생긴 사람들이 물가에 앉아 옷들을 물에다 넣었다 주무르고 있었어요.

“ 언니들... 뭘 하시는 거예요?”

여자들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우리 보고 언니들 이래. 깔깔”

“노망 나셨나 보네” 

    

냇가에 얼굴이 빨개진, 흐트러진 흰머리에 검고 야윈 얼굴 퀭한 눈매의 흉한 여자가

보였어요.

‘그럴 리가.... 저게 나야?’

황급하게 자리를 뜬 나는 우물물에서 샘물에서 몰라보게 달라진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너무나 흉측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더 늙게 변해갔습니다.

마을 사람들 눈에 안 띄게 조심하면서  그 남자를 찾아보기로 결심했어요.


보름달이 다시 보름달이 되었을 때, 그 사내가 사는 집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아주 어린 꽃 같은 아내가 있었습니다.

남자를 닮은 달처럼 환한 얼굴의 아기도 있었어요.

연신 방긋방긋 웃는데 뺨이 이어도 집 마당의 복숭아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너무 예뻐 저절로 미소가 피어 올라왔어요.


너무 행복하고 단란한 가족이었습니다.

나의 존재를 느낀 가족은 의아한 눈으로 나를 훑어봤어요.

어린 아내는 귀여운 눈으로 나를 호기심 있게 쳐다봤지만, 그 사내는

너무나 흉측하게 변하고 남루한 내 모습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힘이 스르르 빠진 나는 팽나무가 있는 마을 어귀로 도망쳤어요.

다다르자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어요.

자신을 몰라주는 사내보다도 해말 간 얼굴의 예쁜 아내가 더 미웠습니다.

내가 구해주지 않았으면 저런 행복도 없었을 것을...!  

   

나는 팽나무에서 목놓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달이 열 번 새로 뜰 때까지.

이러다 죽는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차라리 잘 되었구나 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것과 평범하지 않은 것을 좋아한 것에 대한 벌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를 불쌍히 여긴 천지왕이 삼승할망을 보냈어요.

“ 사내와 아기를 죽이거라. 그러면 너는 예전 모습이 되어 이어도로 돌아갈 수 있으리.” 

    

바닷가에 앉아 멍하니 있었습니다.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제 몸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손이,,, 그다음엔 몸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원망할 대상이 없었어요.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흩어지는 몸이 밤하늘의 별이 되는 듯했어요,

밤바다의 잔물결에 쏟아져 반짝거리는 듯하기도 했고요.

부서지는 파도도 더 하얗게 되는 거 같았어요.

밤바다에 향기도 더해졌습니다.

이어도의 향기가. 

      

나는 생각했어요.

누군가 이러한 것들이 ‘아름답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아름답게 산 것이고 결코 후회스럽지 않다고.

작가의 이전글 인어공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