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랑구 Mar 16. 2024

나는 왜 자꾸 눈물이 날까?

원인 분석을 해보자


나는 한 번 생긴 부정적인 감정이 되게 오래간다. 아주 치명적인 단점이다. 오늘도 무려 몇 주 전에 있었던 억울하고 화났던 일이 다시 생각나서 실장님 앞에서 엉엉 울었다. 실장님과 실원들의 안타까워하지만 동시에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을 읽었다. 스스로도 이런 내가 싫지만 눈물은 불가항력적이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기분 나빴던 일의 키워드만 들어도 눈가가 아려오기 시작하니 말이다.


오늘 하루종일 스스로 다운된 기분을 곱씹으면서 찬찬히 고민해 봤다. 대체 나는 왜 이 모양일까?





1. MBTI가 F라서 그렇다?

나는 정말 확실한 F임에 틀림없다. 내 일만으로도 감정적이지만, 상대방의 일에도 쉽게 공감하고 동조해 준다. 심지어 나와는 전혀 관련 없는 TV나 영화 속 주인공에도 이입한다. 물론 CJ 감성 신파 영화들은 일부러 울라고 만든 것이긴 하지만 문제는 본격적인 장면이 등장하기도 전부터 훌쩍인다는 사실이다. 옛날에 <하모니>라는 여자 죄수들을 다룬 영화들을 봤을 땐 아예 영화 시작 장면부터 눈물이 났더랬다. 아주 행복한 장면이었지만 이후 결말 (엄마와 아이의 이별)이 먼저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감수성이 극히 풍부한 극 F라서 쉽게 화가 나고 눈물이 나는 걸까? 아예 연관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MBTI를 T/F로만 분류하기엔 그 그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정확한 비율은 모르지만 얼추 5:5라고 하면 대한민국 국민 중 50%는 F일 텐데 왜 나만 유독 이러는지 설명할 수 없다.

아마 추가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2. 초예민자 (HSP)라서 그렇다?

어느 블로그에서 HSP에 대한 글을 읽었다. 보고 깜짝 놀랐다. 그간 스스로 예민한 편이라곤 생각했는데, 그 성격이 내 모든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었다. HSP인 사람은 부정적 이슈에 남들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뿐 아니라, 그 이슈가 일어날 것 같은 위험 상황에도 먼저 스트레스를 느껴서 에너지 소모를 엄청 한다고 한다. 나 또한 외향적인(E) mbti인데도 꼭 하루쯤은 혼자 집에서 쉬어야만 쉰 것 같은데, 위와 같은 이유로 에너지 소모가 엄청 되기 때문에 꼭 혼자서 충전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남들이 보기엔 사소한 일에 힘들어하고 눈물 흘리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나는 그 사소한 일로 추후 부정적인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걱정하기 때문이란 것을 알았다. 예를 들면 영업에서 손이 많이 드는 일을 요청하면서 급하다고 빨리 해달라고 요청하면 나는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데, 영업의 요청으로 생산, 품질, 자재 등 지원 부서에 빨리 해달라고 요청하고 대신 안 좋은 소리를 듣게 되는 상황이 미리 그려지기 때문이다. 결국 영업의 요청에 눈물이 나는 것은 영업의 요청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요청이 갖고 올 부정적인 일들 때문이다.


이것도 일리가 있지만 내 끓어오르는 분노나 억울함을 마저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그리고 오히려 HSP는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해서 자신의 감정 표현을 극도로 억제하는 성향이라고 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는 또 눈물이 자주 나는 나와는 반대되는 것 같다. 그럼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고 눈물이 나는 건데?


3. 유전? 호르몬의 영향?

생리 전주만 되면 PMS라고 하는 생리 전 증후군이 온다. 사람마다 다른 증상이 있는데 나는 왕성한 식욕과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날뜀으로 오는 것 같다. 그리고 이 감정기복은 100% 엄마에게서 유전된 것이다.


엄마도 생리 전주만 되면 미리 우리에게 심기 거스를 짓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어렸을 땐 그런 엄마가 감정적인 것 같고 그랬는데 나중에서야 그게 엄마 나름에선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었단 걸 알았다. 나도 이상하게 내가 좀 감정 제어가 안된다 싶으면 어김없이 다음주가 생리 예정일인 경우가 있었다. 정말 호르몬의 영향은 무서운 것이다.


물론 생리 전주마다 매달 난리 피우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매번 크게 화나고 슬펐던 날들이 PMS 기간이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어떤 원인에 호르몬이 더해지면서 어느 정도 시너지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4. 성장 과정에서의 억압?

오늘 운 사건으로 스스로도 너무 창피하고 잘못했다고 생각이 들어서 <마인드카페>라는 앱에서 비대면 통화 심리 상담을 받았다. 그전에 질문지에 본인의 성장환경 등을 쓰게 되어 있는데 상담사분이 이 점을 바로 짚었다.


통제적인 엄마와 다혈질인 아빠 밑에서 맏딸이었던 내가 야단맞지 않기 위해 엄마, 아빠 눈치를 많이 봤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부당하다고 느꼈던 경험이 있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처럼 회사에서 나보다 직급 높은 상사와 트러블이 생기는 경우, 내가 직급이 낮다는 이유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이에 대해 부당하다고 느끼고 억울함과 분노가 폭발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맞벌이하시는 부모님, 이후 타지생활 10년으로 정서적 지지할 곳이 없어서 좀 힘들었을 것이고 자기표현을 잘 못했을 것 같다고 하셨다. 내가 늘 느끼던 바였는데 상담사분이 전화받자마자 이런 얘기를 바로 꺼내셔서 소름 돋았다.


사실 이 성격에 대해 치료를 위해 상담의뢰를 드린 거지 합리화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현재 성격에서 가진 문제점들이 어떤 부분에서 기인한 것인지를 알게 되니 확실히 이해가 되고 나 자신이 조금 가엾기도 했다. 그리고 1번부터 4번까지의 모든 점이 합쳐져서 오늘 그렇게 울분을 토하고 펑펑 울었던 내 자신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 우는 것은 고쳐야 하는 병일까? 그냥 그 증상만 가지고는 글쎄다. 오히려 우는 것은 카타르시스를 발생시켜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 때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잘 우는 행동이 어디서 왔을까를 생각해 봤을 때, 마음속 상처나 방어기제에서 왔다면 그건 병이니까 치료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나도 30여 년 살면서 이제야 제대로 된 병명을 받은 느낌이라 오히려 속이 후련하다.


결국은 그럼에도 치료법은 스스로가 잘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뿐이다. 오랜 시간 연습하면 이렇게 울보였던 나도 언젠간 웬만한 일에는 그냥 슬쩍 웃고 마는 무던함을 갖출 수 있을까?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설렘반 걱정 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 내 왕따 가해자들의 말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