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총무

글배우,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by 그럼에도

p.190


[오래 함께 하고 싶은 사람]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


나에게 하는 말들을 조심하며

나에게 배려한다는 게 느껴지는 사람


나의 선택과 내 생각을 믿어주는 사람



몇 년 전 어쩌다 보니 몇몇 모임의 총무 역할을 하는 일이 생겼다. 모임의 참석자는 되어본 적이 있지만 총무처럼 어떤 역할을 맡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신기했다. 인싸나 인플루언서도 아닌데 사람들이 왜 나를 지목했을까? 옆에 있던 봉봉 오빠 말로는 착하게 생겨서, 즉 이 중에서 유일하게 욕심이 없어 보여서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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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동안 만만한 총무로서 역할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었다.


총무의 장점 : 모임 구성, 장소 등등 내가 주도적으로 기획을 할 수 있다.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역할상 많은 사람들과 연락할 일이 생긴다. 그렇게 사교적인 사람이 되어간다.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조금 더 관심 갖게 된다. 많은 추억이 생긴다. 나의 역할에 감사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 힘이 난다^^


만만한 총무의 단점 :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 아닌 마음 약하고, 싫은 소리 못하는 그런 총무였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역할 분담 대신 혼자 준비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조금 영악한(?) 사람들로 인하여 마음고생하는 일이 생긴다.(독박이라는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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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총무를 하면서 배운 점이 있다면 '돈 관계'를 통해서 주변 사람을 더 깊게 알게 된다는 것이다. 10년을 만나도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다. 만남의 시간은 늘 훈훈한 분위기였다. 밥 먹고, 술 마시는 자리에서는 누구나 호인이다. 그리고 그 후 더치페이를 하면서 재밌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총무인 내가 먼저 계산을 하고, 다음에 더치페이를 했다. 더치페이의 가장 빠른 입금자는 재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다들 사회인이고, 경제적으로 넉넉해 보였지만 그중 누군가는 늘 가장 늦게 입금을 했다.


그 누군가는 늘 동일인이었다. 현금이 부족해서가 아닌 미루는 습관 같은 것이었다. 대기업이 하청업체 결제 미루는 것처럼 몇만 원 미만의 소액이었지만 늘 천천히 보냈다. 1회성 모임이었던 곳 중 누군가는 익명성에 기대어(?) 돈을 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이래서 단체 모임은 인증샷이 정산 시에 필요함! ㅠㅠ)


3주 동안 카톡방을 정산으로 도배한 후에도 내지 않던 그 쫑쫑이는 갠톡 후에 어렵게 받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참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던 쫑쫑이는 나에겐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후 다른 모임에서도 공식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은 계속되었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 시간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10년 넘게 만나온 친구를 올해 열 달의 시간 동안 이전보다 더 많이 알 수 있었던 것처럼.


새로운 역할을 통해서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그리고 내가 왜 이런 역할을 거절하지 못해서 이렇게 피곤할까라고 생각하며 나를 탓했었다. 버릴 경험은 하나도 없다고 했던가? 그렇게 피곤했던 경험도 다른 자리에선 또 다른 자산이 되어서 그렇게 내 일상에 녹아들었다.


역할은 크거나 낮음에 상관없이 피곤함이 따른다. 하지만 잃는 것만큼 얻는 것이 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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