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12살의 생각을 현실로 만나보기
내가 12살이 되던 해 이사 간 집은 1층 집이었지만 다락방이 있었다. 사실 방이라기보다는 창고 같은 공간이었지만 나는 그곳을 방으로 꾸몄다. 다락방의 창문을 통해서 옆집 언니의 피아노 연주를 밤마다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다.(그 언니는 밤 9시부터 연습을 하곤 했다^^;;) 제목도 모르는 클래식을 그렇게 매일 들으면서 피아노에 없던 관심이 생겼다. 옆집은 그렇게 밤마다 피아노를, 뒷집 식당은 새벽 3시 반, 새벽 공기를 가르는 도마 소리로 리듬감 넘치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리듬감이 살아 있는 곳에서 5년을 살았다. 창문을 통해 듣는 피아노 소리는 좋았지만 뒷집의 순댓국 냄새를 매일 맡는 게 너무 싫었었다. 입사 후 부장님이 좋아하는 식당에 따라다니기 전까지는 입에도 대지 않는 음식이 순댓국이었다.
2년 전 갑자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건, 우연히 피아노가 있는 홀에서 멋지게 연주하는 남학생의 뒷모습을 보고 나서였다. 그렇게 약간은 충동적으로 시작했다. 아마도 나는 그 학부생을 통해서 잊고 있었던 12살의 그때를 떠올렸던 거 같다.
피아노 학원에서는 초보인 나에게 재즈 피아노나 반주 과정을 권했다. 하지만 나는 소나티네를 배우고 싶다고 우겼었다. 막연하지만 그냥 클래식이 배우고 싶었다. 도레미에서 시작하는 내가 클래식을 배우겠다고 할 때, 선생님의 난감한 표정이 기억이 난다 ㅎㅎ나의 이유를 몰랐던 이런 행동은 12살 때 들었던 클래식의 영향이 아닐까?
작년 가을 아빠는 갑자기 본업에서 부업 겸 취미로 '벼농사'를 해보겠다고 하셨다. 농촌에서 자라났고, 지방에서 살고 있지만 농사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아빠의 폭탄선언에 모두 반대했었다. 너무 고생스럽고, 지금 가게도 바쁜데 그렇게까지 해야겠냐고 반대했지만 아빠를 말릴 수 없었다. 아빠는 모내기를 하고, 추수하고 다 기계가 하니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지금 일과 병행하겠다고 하셨다.
아빠는 어린 시절 가난한 환경이었다. 부유한 집들은 논이 있었고, 가을에 들녘이 노랗게 변하는 게 예뻐서 한참을 바라보곤 했었다고. 아빠가 10살 무렵 아빠는 나도 노란 벼를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렇게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5월에 나는 업라이트 중고 피아노 한 대를 장만하고, 아빠는 벼농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0살의 소년의 꿈은 60살이 넘어서 만났다. 아빠의 첫 프로젝트인 노랑 벼는 옆 논의 벼보다 키가 더 크고, 더 튼실했다. 그렇게 무럭무럭 잘 자라는 '효자'녀석이었다. 아빠는 그 효자가 보고 싶어서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얼굴을 확인하러 가곤 했었다.
그렇게 잘 자라던 롱다리들이 이번 무서운 태풍에 골절을 입었다. 한 번의 태풍은 잘 견뎠지만 두 번째 태풍은 벼를 누워있게 만들었다. 아빠는 그렇게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우여곡절 끝에 추수를 하고 보니, 결과는
쌀값이 너무해
기계화가 많이 진행된 농업 환경이라 땅을 갈아엎는 것도, 모내기, 추수도 모두 기계화가 이루어졌고, 아빠는 비용만 지불하면 됐다.(물론 이 과정 이외에는 수작업이다ㅠㅠ) 정미소에 받는 쌀값은 80kg에 19만 원이라고 했다. 인건비를 제외하더라도... 이런저런 비용을 제외하고 나니 남는 게 별로 없다고. 1년이 너무 허무하다고 했다. 난 본업이 있으니 다행이지만 농민으로는 못 살겠다고. 농협은 농민의 친구가 아니라고. 전업 농부들은 농협에 빚을 지고 산다고.
인간다운 권리와 최저 임금을 말할 때에도 무감각했다. 하지만 막상 옆에서 바라보니, 최저임금보다 못한 게 벼농사, 우리의 의식주 중에 '식'. 쌀에 대한 것이었다. 소비자가 쌀 10kg 사는 가격은 3만 원 내외 vs 치킨 한 마리 가격은 19,000원.
그렇게 아빠와 나는 본업 외에 궁금했던 것을 도전했다. 결론은 아빠는 올해로 벼농사 프로젝트를 시작과 함께 종료했고, 나는 소나티네 1 한 권을 마무리했다. 코로나라는 팬데믹이 올진 몰랐지만 그래서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아졌다. 아빠의 본업도 코로나 영향으로 일이 적어졌고, 나 역시 칼퇴가 가능한 환경이었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가혹한 현실은 이렇게 또 다른 기회가 되기도 한다.
놀면 뭐하니? ㅎㅎ 그렇게 10살, 12살의 마음을 현실로 녹여낸 2020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