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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 만든 아날로그 감성

유현준, '공간이 만든 공간'

by 그럼에도

p.348


가상공간의 확장과 발전은 현실 공간에 영향을 미쳐 공간의 의미를 바꾸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힙플레이스는 을지로이다. 을지로가 '힙지로'가 된 이유는 휴대폰 카메라와 SNS 때문이다. 과거 우리가 '나'를 표현하고 과시하는 방법은 물건을 소유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서 명품 가방을 사서 들고 다니며 나를 과시했지만, 지금은 그 돈으로 도쿄의 뒷골목에서 우동을 먹고 그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린다.


+ (중략)

을지로 카페 한 컷

힙한 가게들은 일부로 간판을 내걸지 않는다. 그래야 주변에 계신 분들이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간판을 내거는 대신 인터넷상에 예쁜 사진을 올린다. 인터넷에서 그 사진을 보고 찾아오는 힙한 젊은이가 이들의 주요 고객이 된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SNS에 예쁘게 찍은 가게 사진을 올려 주길 기대한다. 을지로의 힙한 공간은 인터넷 가상공간상에서 정보를 얻은 사람만이 올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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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간 인터넷을 통해서 새로운 대륙이 만들어졌고, 기술로 인해서 우리의 실제 공간이 새롭게 재구성되어 가는 것을 보고 있다.


역사를 보면 창조적인 생각은 항상 '다른' 유전자와의 결합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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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말해 주듯이 기술혁명만으로는 획일화를 벗어나기 힘들다. 디지털과의 융합 없이는 진화에서 뒤처지겠지만 동시에 디지털과의 융합만으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창조적 생각을 위해서는 디지털 이외에 다른 무엇이 더 있어야 한다.


역사를 보면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루이스 칸처럼 과거에서 문화 유전자를 찾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들어서 고전을 읽으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누구보다도 디지털화되어 있는 젊은 친구들이 다 쓰러져 가는 건물이 있는 을지로에 가고, 1980년대 리메이크 노래를 듣고, 뉴트로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sticker sticker

우리가 점점 더 디지털화되어 가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점점 더 아날로그적인 것을 찾는 이유도 있다. 손 글씨 쓰기 연습, 색칠하기 연습, 가구 만들기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아날로그 열풍은 지나치게 디지털화되어 가는 현실에 대한 반작용이다. 디지털화되어 갈수록 나 자신은 데이터화 된다.


'나'라는 존재가 비트로 구성된 데이터화 되는 현실은 원자로 구성된 몸을 가진 우리로 하여금 점점 불안감을 느끼게 만든다.


피아노를 살 때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모두 전자피아노를 권했다. 하지만 나무로 만든 건반, 어쿠스틱 악기를 만지는 느낌이 좋아서 업라이트 피아노를 샀다. 이동의 어려움과 공간까지 차지함에도 건반을 만지는 느낌을 포기할 수 없어서~


오랜만에 글을 종이에 적어 보았다. 예전보다 속도감이 느려진 필기 실력과 달라진 글씨체가 과거와 달라진 나를 알려주었다. 세상은 점점 AI가 지배한다는데, 오히려 과거 추억으로의 소환, 힙하다는 카페의 인테리어는 옛날 옛적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빠른 것을 추구하면서도, 옛 것을 찾는 양면의 모습! 2020년 레트로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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