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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읽어 나가는 사람의 마음

유선경, '어른의 어휘력'

by 그럼에도

p.103

나는 독심술가가 되고 싶었다. '독심술(讀心術)', 생각과 마음을 읽어내는 기술이다. 독심술을 익히면 상대의 표정과 주변 공기의 긴장감을 감지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는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본인도 모르게 지었다가 순식간에 바뀌거나 사라지는 표정을 포착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완벽하게 표정을 숨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오래 지켜볼 필요도 없다. 척 보면 안다. 당신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내가 당신과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사랑에 빠질 수 있을지. 독심술을 익히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참이고 거짓인지 나를 *깐보는지 *야로가 있는지 말을 곱씹고 뜻을 재는 데 힘을 허비하지 않아도 된다. 대부분의 운명이 인연에서 비롯되니 독심술을 익히면 굽이굽이 돌아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사람 때문에 상처 받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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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넘으면 얼굴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보인다는 말도 믿지 말자. 그런 사람도 있지만 안 그런 사람도 많다. 웃음 머금은 선한 인상이지만 *굴퉁이 거나 *망종인 자도 있고 무뚝뚝하고 *까끄름한 인상으로 보여도 칠칠하고 다정한 이들이 적지 않다.

아버지는 사기꾼 치고 인상 나쁜 사람은 없다고 하셨다.
인상이 험악하면 사람들이 속겠냐? 인상이 좋으니까 사람들이 끔뻑 속지!

하기는 '사이비(似而非)'라는 말도 진짜같이 보여도 가짜라는 뜻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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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많은 사람이 말보다 인상을 더 신뢰하는 듯 보인다. '생긴 대로 논다'라고 했다. '겉만 보고 모른다'했다 오락가락한다. 뜻은 반대지만 인상과 외모를 일정한 범주에 집어넣고 판단한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지 않다. 나는 표정이나 인상을 이목구비처럼 외모의 일부로 볼뿐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지 않으려 한다. 보여도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말이 정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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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속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이며 무엇보다 살아 있는 생명체이기에 변화한다.

그 무한함을 간편하게 맥락 지어 일정한 몇 개의 범주에 집어넣으려 한다면 어리석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말들'이 여기에서 나온다.


앞으로도 그런 말들은 끊임없이 주변을 유령처럼 떠돌 것이다. 그러나 내가 유령을 만들지는 말자. 누군가의 생각이나 마음을 알고 싶다면 갖지도 않은 독심술을 부리지 말고 말(글)을 건네자. 그 말(글)이 가진 힘을 믿자. 우리가 어휘력을 키우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도 결국 소통에 있지 않던가.


* 깐보다 : (동사) 어떤 형편이나 기회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가늠하다 또는 속을 떠보다.

* 야로 : (명사) 남에게 드러내지 아니하고 우물쭈물하는 속셈이나 수작을 속되게 이르는 말.

* 굴퉁이 : (명사) 1. 겉모양은 그럴듯하나 속은 보잘것없는 물건이나 사람 2. 씨가 여물지 않은 늙은 호박

* 망종 : (명사) 아주 몹쓸 종자라는 뜻으로 행실이 아주 못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 까끄름하다 : (형용사) 편안하지 못하고 불편한 데가 있다.


예전에 눈치가 참 빨랐던 회사 사람이 있었다. 부장님이 언어로 표현하기도 전에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이미 그다음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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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눈치의 비법이 뭐야?"라고 묻는 나에게 그 직원의 답은 '눈칫밥을 먹은 기억'이라고 했다. 원래는 부유하게 살다가 고등학교 다닐 무렵, 갑자기 아빠 사업이 어려워지고, 친척집에 얹혀살았다고 했다. 잘 살 때는 몰랐는데, 친척집에 살면서, 늘 친척의 눈치를 살피다 보니 저절로 눈치가 확~늘었다는 이야기였다.


난 '독심술'까지는 아니어도 '눈치' 빠른 사람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눈치 빠르고, 소문도 빠른 사람들을 부러워했는지도 모른다. 하치만 눈치라는 것을 선천적으로도, 후천적으로도 느린 나는 아주 오래오래 고생했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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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험에도 '외모'라는 객관적인 요소 역시 믿을 것이 못되었다. 특히 세련된 스타일링과 언변으로 무장한 사람들의 그 속내를 파악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것이었다. 한참을 잘 지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방(?)을 맞는 상황이 있었기에, 외모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게 적절하지 않음을 안다. 그럼에도 선한 인상의 사람에게 '선할 것'이라는 지나친 착각과 환상으로 시작하는 나의 어이없는 사회생활은 자꾸 반복된다. ㅠㅠ


외모를 바라보되, 두 귀로 그 사람의 언어를 정확히 듣고, 나의 입으로도 적절한 단어와 어휘 사용으로 소통하면서 알아가 보자.


독심술 대신 적절한 어휘 사용과 문해력으로 읽어 나가는 사람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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