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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존재

발타자르 그라시안, '사람을 얻는 지혜'

by 그럼에도

p.28

[ 고마운 사람보다 필요한 사람이 되어라 ]

아테네.png 아테네 여신
신을 신성한 존재로 만드는 사람은 신상을 장식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상을 숭배하는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고마운 존재가 되기보다 필요한 존재가 되고자 한다.


상대방이 당신에게 고마워하기보다 기대하고 의지하게 만들어라. 기대는 오랫동안 기억되지만 감사의 마음은 이내 사라지기 때문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물로 목을 축이고 나면 자신의 갈 길을 가고, 아무리 맛있는 오렌지도 알맹이를 먹고 나면 껍질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듯, 의지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나면 더 이상 예의도, 존경도 사라지게 된다.



모임에서 역할을 맡은 적이 있었다. 처음 맡은 역할이 부담스러웠지만 거절을 못하는 성격상 결국 역할을 떠안았다.(사실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ㅠㅠ) 그렇게 시작했지만, 정말 정성 들여서, 운영을 했고, 하루 종일 카톡방이 울리고, 오프라인 모임이 수시로 열리는 그런 모임이 되었다. 잘 운영되어서 '고맙다'라는 말과 함께 인정을, 칭찬을 종종 받았었다. 나에게 이런 리더십이 있었나~하며 그렇게 자아도취에 빠진 순간이었다.


칭찬은 열정 페이였다. 열정은 인정하되, 비용은 지불하지 않는 '열정 페이'처럼~나의 에너지와 시간은 인정하되, 난 그곳에서 필요한 존재는 아니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 깨달았다.


상황상, 그 모임에 참석하게 어렵게 되었다. 내가 참석하지 못한다면, 이 모임이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어리석은 걱정을 한 적도 있었다. 완벽한 착각이었다. 처음부터 나란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내가 없이도 자연스럽게 모임은 흘러가고 있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고 했던 말이 무색하게, 그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도, 대화방에서 대화하지 않아도 조금도 티가 나지 않았다. '그게 뭐라고~ 한 때 그렇게 열정을 다해서 집중하고, 내 시간과 에너지, 돈까지 아낌없이 쏟아부었을까?'라며 그때를 후회했었다.


하지만 잃은만큼 얻었다. 혼자서 느낄 수 없는 '우리'라는 공동체 느낌과 경험을 얻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감사하고 또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추억을 쌓았고, 많이 웃었던 시간이었다. 관계지향형 나에서 이젠 내 인생에 열정과 에너지를 집중하는 오롯한 나로, 나에게 돌아왔다.


나에게 오는 길이 멀고도 길었다. 돌고 돌아서 원래 있어야 할 내 자리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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