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참석러,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다!
25세로 시작해서 코로나가 찾아오기 전까지 나를 표현하는 단어는 '프로참석러'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의 경조사, 각종 모임 등에서 나는 '개근상'을 주어 마땅한 사람으로 살았다. 어딘가에 속하고 싶었고, 주변의 사람들을 평생 만나야 한다는, 이런 강박관념은 나를 프로참석러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프로참석러 : 모임이나 회의 등의 자리에 참석하는 일을 마치 직업인 듯이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어마어마한 시간과 돈, 에너지를 모두 쏟아붓고 났을 때, 코로나바이러스가 혜성처럼 나타났다. 그리고 나에겐 이 모든 관계의 안식년 같은 고요한 시간이 찾아왔다.
엄마 말씀으로는 어렸을 때 나는 극도로 수줍음이 많고, 말하기를 힘들어하는 아이라고 했다. 집에 놀러 온 손님들이 주는 용돈도 감사히 받지 못하는 소심함을 24살까지 간직하며 살았다.
그런 내가 취직을 할 꺼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학교 친구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다들 1달, 길어야 1년 안에 그만둘 거라는 예상도 모두 빗나갔다. 10년 넘게 한 직장에서, 같은 업무를 무한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인맥'이니, 사회생활 처세술 책에서 본 그 말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모든 관계를 성실히, 열심히, 영혼까지 갈아 넣는 정성을 그렇게 다했던 것 같다. 타고난 나의 내향성을 버리고, 꿈에 그리던 외향성을 가지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리고 모든 모임과 원하지 않았던 회사 동호회까지 모두 참석하는 '프로참석러'로 다시 태어났다.
결국 어떤 세계에 적응해야만 한다는 생존 본능과 욕구는 이렇게 '프로참석러'로 표현되었다. 결과적으로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자 했던 그 노력들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지만 그곳에 있어야 하는 당연한 사람으로서 나의 존재는 솜사탕처럼 가벼웠다.
외롭다고 관계로 도피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모든 문제는 외로움을 피해 생겨난 어설픈 인간관계에서 시작됩니다.
- 김정운,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中 -
프로참석러에서 모든 인연을 미니멀하게 정리한 순간, 주변을 당황시켰다. '설마 네가?'라는 표현으로 누군가는 당황했고, '노처녀 히스테리'같은 그런 재미없는 단어로 누군가는 그렇게 쉽게 말하리라. 햄버거를 시키면, 그다음 주문은 당연히 콜라인 것처럼~그렇게 아무도 그 이유도, 답답한 속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당사자인 나도, 나를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론은 내 마음이 가난한데, 겉으로는 졸부처럼, 마음이 부자인 사람처럼 행동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포장지는 오래가지 못한다. 비가 오면 젖어버리는 종이처럼.
서점에 가면 수많은 책 중에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의 글이 베스트셀러 대열에 자주 보인다. 가끔 궁금했다. 마음이 약한 사람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그렇게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독이고, 쓸어안고 있을 텐데. 가해자(?)라고 생각되는 소시오패스 같은 사람들은 저런 책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그런 길고 긴 싸움 같다고나 할까?
낮은 자존감은 정신과 원장님의 '자존감' 책을 읽었다는 것에서 채워지지 않았다. 오직 '자존감이 낮구나'라는 진단명을 알았을 뿐이다. 가난한 마음, 낮은 자존감을 올리는 것은 '뿌듯함, 대견함'같은 그런 감정이었다.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구나', '이걸 할 때 재밌다' 등등의 그런 작은 감정이 쌓여서 자존감이 올라갔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말을, 어렵지만 스스로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그런 날에는 비 온 후 연둣빛 새싹처럼 마음에도 싱그러움이 묻어났다.
'모소 대나무'라는 이름과 이야기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4년 동안 3cm의 성장으로 멈춰 있는 것 같지만 5년째 하루에 30cm이상 성장하는 모소 대나무처럼~ 보이지 않지만 어느 순간에 단단히, 굳건히 자라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의 시간이 '모소 대나무의 성장 4년 차'의 시간으로 쓰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