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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요?

비키 마이런, 브렛 위터, '듀이'

by 그럼에도

p. 34


1985년에는 마을 북쪽에 있던 랜드오레이크스라는 버터와 마가린을 생산하는 큰 기업의 공장이 문을 닫았다. 곧이어 실업률이 10%에 이르렀다. 10%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스펜서 시의 인구가 단 몇 년 동안만 천여 명에서 8천 명으로 줄어든 상태였으니 8백 명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비중은 꽤 큰 것이었다. 주택 가격은 하룻밤 새 25%나 떨어졌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마을을 떠났고, 아예 아이오와주를 떠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농지 가격은 계속 떨어졌고 결국 더 많은 농부들이 파산에 이르렀다. 하지만 땅을 경매에 부쳐봤자 대출금을 회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결국 은행도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됐다.


+ (중략)


도서관은 이 상황에서 마을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랜드오레이크스가 문을 닫았을 때에 도서관에 일자리 은행을 설치해 구인 리스트나 구직에 필요한 신기술에 대한 책, 그리고 직무 요건이나 기술 트레이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또 컴퓨터를 구비해 마을 사람들이 이력서를 작성하고 자기소개서를 쓸 수 있게 했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이때 컴퓨터를 처음 보았을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이 일자리 은행을 이용했기 때문에 마을 전체가 우울한 분위기였다. 나처럼 직장이 있는 사서도 우울함을 느낄 정도였는데 해고당한 공장 노동자, 파산한 자영업자, 농장이 파산해 실직한 농부들을 얼마나 암울했겠는가.

듀이.png 듀이 리드모어 북스, 스펜서 공공도서관의 마스코트이자 사랑둥이

그러던 중, 우리 품에 듀이가 뛰어들었던 것이다. 사실 듀이가 누구를 먹여 살린 것도 아니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낸 것도 아니고, 듀이때문에 경제가 회복된 것도 아니었기에 이 사건이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경제가 나쁠 때 겪는 가장 큰 피해 중 하나는 마음의 상처가 아니던가.
경기가 나쁠 때 사람들은 종종 기운이 빠지고 부정적인 생각이 사고를 지배하게 하며 매사를 어둡게 바라보게 된다.
나쁜 소식은 상한 빵을 먹는 것만큼이나 해로운 것이다.
그런데 듀이는 잠시나마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잊게 해 주었다.
찡찡이.jpg 대통령과 찡찡이

사실 듀이는 그보다 더 큰 존재였다. 듀이가 도서관에 오게 된 사연은 왠지 모르게 스펜서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았다. 즉, 모두가 듀이의 상황을 자신과 동일시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 은행이나 외부 경제적 힘에 의해 등 떠밀려 도서관 반납함에 쑤셔 박히듯 추락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수확한 곡물을 먹고사는 미국의 다른 곳들로부터 버림받지 않았던가.


이 고양이는 냉동고 같은 반납함에 버려졌고, 공포에 떨며 외롭게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였다. 듀이는 그 어두운 밤을 견뎌냈고, 그 끔찍한 사건은 결국 녀석에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이 고양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믿음을 버리지 않았고 삶에 감사할 줄 알았으며 겸손했다.


어쩌면 겸손이라는 말은 적절한 단어가 아닐는지도 모르겠다. 얘는 고양이니까. 그러나 오만하지 않다고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듀이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것은 죽다 살아온 생존자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일지 모른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저 너머까지 갔다 온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의연함,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가 듀이를 발견한 그 순간부터 이 작은 고양이는 모든 것이 더 나아지리라 믿었던 것이다.


가장 추운 날 아침, 도서 반납함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발견한 사서, 비키 마이런. 도서관에서 고양이와 함께 생활한다. 고양이의 이름은 '듀이 리드모어 북스'로 정했다. 듀이는 마을 사람들의 보살핌 속에 도서관 고양이로 지냈고, 어느새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과 위안을 안겨주었다. 19년을 도서관과 함께한 듀이 리드모어 북스에 관한 글이다.


고양이는 아니지만 나도 우연히 랑아를 만났다. 동물을 예뻐하지도, 만지지도 못했는데, 유연히 '유행사'라고 하는 유기견 입양 단체 앞을 지나가다가 내 눈을 고정시키는 눈빛을 가진 강아지를 보았다. 작고, 귀여운 얼굴이 아닌 조용히 한 곳을 응시하고, 차갑게 느껴지던 그 모습, 눈빛이 신기하게 아빠를 닮은(?) 아이였다.


너무나 충동적인 것 같아서 한 시간을 다른 곳에 가있었지만 처음 본 강아지 눈빛이 잊히지 않았다. 다른 강아지들 사이로 씩씩하고, 차갑고, 큰 키에 롱다리의 강아지, 랑아를 입양했다. 랑아(朗兒:밝은 아이)를 키우면서, 서로 가족이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랑아는 산책을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같은 풍경을 자주 보는 것을 싫어했다. 늘 앞서 걸었고, 방향도 본인이 정했다. 탄천의 동서남북, 어제는 공원, 오늘은 차도 옆 인도, 옆 동네 주택가, 아파트 단지 등등. 새로운 풍경에 대한 호기심이 너무 많았다. 랑아에 끌려다니면서, 그만 좀 걷자고 소리도 질렀다. 하지만 따라다니면서 보니, 모두 새로운 곳이었다. 가까운 곳이지만 이런 공간과 동네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보석같이 예쁜, 숨겨진 공간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랑아였다.


산책하던 풍경 중에 옆 동네, 주택가 가죽공방에는 퇴근 후 취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창문 너머로 보았다. 동네에 문화강좌며, 저자 특강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계절에 따른 풍경의 변화도, 잔디를 밟을 때 느껴지는 폭신한 감촉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가족은 닮는다던데, 랑아는 나랑 하나도 안 닮았다'라며 불평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내가 랑아를 닮아갔다. 그렇게 바라본 풍경 속에 내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자 특강에 가서, 직접 들어보고, 그 저자의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꽃시장에 가서 꽃을 사 와서 집에서 꽃꽂이도 해보고.(랑아는 꽃향기 맡는 것을 좋아한다)


랑아를 만나면서, 시계추 같은 일상에 새로운 특이점이 시작됐다. 알게 모르게, 나에게 인생의 호기심과 도전이라는 단어가 랑아를 만난 후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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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세계가 다가왔다. 랑아는 사랑이었고, 새로운 세상과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호기심이란 단어를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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