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엄마의 꽃시'
배추흰나비
백복순 (서울 금천구 성인문해교실)
눈을 비벼도 보이지 않고
크게 소리 질러도 울리지 않고
어깨를 펴도 더욱 오그라들고
그냥 코딱지만 했었다
어찌해 보려고
꿈틀거려 봐도
내 자리는 어느새 구석탱이
그게 내 길이려니
내 인생이려니
눈을 떠도 보지 못한 채
소리 질러도 울리지 않은 채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전봇대였다
그. 러. 나
칠십 다 된 나이에
들어선 배움의 길
하늘이 파랗다
소리가 우렁차다
펼친 내 어깨에 힘이 솟는다
아직은 날지 못하지만
훨훨 날을 내일을 꿈꾼다
나는
꿈을 꾸는
행복한 배추흰나비
생명이 있는 한 배우고 싶다
김성순(광주 첨단종합사회복지관)
젊어서는
시부모님 봉양 위해 부지런한 두 손을 썼고
남편을 위해 밝은 눈을 썼으며
자식을 위해 간절한 마음을 썼다
칠십의 나이에
떨리는 손과 흐린 눈을 갖고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내 맘속 열정
너 하나만을 믿고 글씨를 쓴다
기억하고픈 고마움과 감사를
연필로 열심히 쓰고
어릴 적 배우지 못한 부끄러움을
지우개로 지워간다
기억 잘하는 연필이 있고
삐죽 빼죽이도 미끈하게 해주는
힘 있는 지우개가 있기에
생명이 있는 한 배우고 싶다
82세에 시작하는 꿈보따리
정진섭(인천 주안도서관)
감자 한 통 깎아놓고 학교 구경하고 왔더니
엄마는 집에 들어오지 말라며 몽둥이로 때리셨다
그것이 학교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결혼해서 남편은 글도 모르는 무식쟁이라고
아무 이유 없이 욕을 달고 살았다네
글도 모르는 무식쟁이에
일까지 못하는 병신이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하늘이 뱅뱅 돌 때까지 산속에서 죽어라고 일만 했지요
아이들을 생각하며 참고 또 참으며 꼭 글을 배우고 싶었지요
내 나이 82세
가방을 메고 공부하러 가는 이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
봉화 깊은 산속에서 눈물은 이제 잊어야지요
하늘에서 행여 나를 부르시면
이제 공부를 시작했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저승에 있는 남편에게 서운했던 마음 담아 편지 한 통 쓰고
목사님께 내 삶을 마무리하며 감사편지 한 장 쓰는 것이
이제 공부를 시작하는 작은 꿈보따리 주인의 소원이라고
살다가 보면, 먼 수가 난다
진솔한 글에서 느껴지는 여운을,
마음과 생각이 진실하게 담긴 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오롯한 감동을!
멋진 시인들의 근사한 글을 한데 모아서 책으로 엮어주신 김용택 시인에게 감사드립니다.

http://mobile.picturebook-museum.com/artist_book.asp?b_code=11436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1201500&memberNo=126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