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때 친구 따라간 콘서트를 빼고는 콘서트라는 아름다운 공간을 가본 적이 없다.
좋아하는 음악과 가수도 있는데, 콘서트를 찾아갈 만큼의 열정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나는 감수성이 무딘 사람이다. 우연히 분당, 중앙공원에서 해마다 열리는 동네 파크콘서트에서 넬의 공연을 봤다. 음향 시설이 좋을 리 없는 야외였음에도 넬의 음악은 내가 차에서 들은 넬 CD 음색과도 차이가 없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완벽했다. 언젠가 콘서트를 가야지~라고 처음 마음먹었던 순간이 2019년 6월 토요일 저녁이었다.
그런데 혼자 콘서트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와 같은 취향의 친구가 없었다. 혼자 가도 되는데, 어리지도 않은데, 혼자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넬의 클럽 콘서트라는 곳을 갈 기회를 그렇게 잃어버렸다.
시간이 흘러 흘러 코로나라는 악당이 들이닥쳤다.
악당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유튜브 중독자 일상이 되었다. 어느 날 우연히 어떤 곡을 듣다가 푹 빠져버렸다. 작년 12월 팬클럽에도 가입하고, 온 택트 콘서트도 집에서 봤다. 드디어 오늘 유료로 첫 콘서트에 갔다(20살에 간 콘서트는 친구가 좋아한 콘서트 따라간 거라 살짝 제외함).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나치다 싶게 철저하게 했는데, 콘서트 2주 전부터는 더 조심했다. 커피 한 잔 커피숍에서 마시지 않고, 식당에도 가지 않았다^^;; 콘서트 전날 아침에 갑자기 목이 잠겼다. 열은 안 나지만 불안했다. 마침 입안에 구내염도 생겼는데...... 하늘에서도 비가 내리고, 내 마음도 눈물이 내린다. 콘서트에 가도 될지 걱정이 됐다. 마침 동생 전화가 오고, 이상 증세가 있으면 당장 선별 진료소에 가보라는 쿨한 말을 던졌다.
진료가 끝날 시간쯤이었고, 비도 오고, 나 이외엔 대기가 1명. 서류를 접수하고, 검사를 받고, 비용은 무료였다. (재난문자에서 말하는 곳에 간 곳도 없고, 순전히 나의 찜찜함으로 왔으니 돈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결과 나올 때까지 집에만 있으라는 설명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한숨만 나왔다.
집에 오자마자 잠들어서, 12시간 후에 깨어나고, 목 상태도 원래 되로 돌아왔다. 9:30 검사 결과도 음성이었다. 공연 가기 완벽한 상태!!!
예전 같으면 쉽게 넘겼을 가벼운 증세에도 확인을 받고 갔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도, 받고 싶지도 않았다. 영상에서 봤던 떼창이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종이나 그런 것은 없었다. 정말 음악만 조용히 앉아서 듣고, 박수를 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2시간 40분 공연은 코로나를 벗어난 세계였고, 지친 나에겐 주는 선물이었다.
집과 회사 업무 이외엔 거의 활동하지 않았다. 운동을 하러 동네 헬스장을 갈 용기도 나지 않을 만큼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불편했다. 학부 때 별명이었던 '집사람(집에만 있는 사람)'으로 그렇게 살았다. 처음엔 답답했는데, 몇 달 지나니 익숙해졌다. 나에게 이런 면이 있나 싶었고, 주변 사람들에 비하면 비대면 문화에 답답함도 덜 느꼈다. 1년이 넘는 집사람 생활 중 오늘 이 시간은 진정한 일탈이었다.

다 늦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25살 취직도 했으니, 언젠가 악기를 배워봐야지~라고 어렴풋하게 생각만 했었다.
시간이 흘러 흘러 대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강의실에 들어가려면,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라운지 옆을 지나게 되는 동선이었다. 라운지에서 피아노를 멋지게 치는 학부생 뒷모습을 종종 봤었다. '나도 배워야 하는데.' 그다음 해 마지막 학기가 종강하던 날, 피아노 학원을 등록했다. 그리고 도레미부터 배웠다.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너무 좋아했던 엔니오 모리꼬네의 'Love affair'를 배우고 싶다고 수줍게 선생님께 고백했다. 선생님 말씀은 지금 상태로는 1년 안에 불가능하다고 하셨다. 그렇게 동요부터 시작해서, 내가 가져온 쉬운 악보집으로 진도를 나갔다. 그리고 배웠던 음표를 참고해서, 목표 곡을 천천히 독학하기 시작했다. 6개월 만에 내 손으로 'Love affair'를 연주할 수 있었다.
이런 결과의 비밀은 주 4회 2시간 이상 학원에 가서 연습했다.(집에 피아노가 없었다) 레슨은 일주일에 1번 30분인데, 도저히 진도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굳어진 손과 머리, 왼손과 오른손의 부조화 등등 아주 총제적 난국이었다.
그런데 야나두! 나도 할 수 있었다. 시작한 지 3개월 후엔 학원에서 열리는 작은 콘서트에 참여했다. 눈 앞에 목표가 있으니, 학원 가는 재미가 있었다.
작년 가을에 새로 배우기 시작한 과정은 현재 나와는 어떤 관련성이 없었다. 그런데 시작한 이유는 신기하게도 몇 년간 그 분야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것이다.
내가 잘 모르는 것을 잘 아는 사람에 대한 선망과 호기심이 있었던 것 같다. 코로나 시대, 비대면 교육 등등의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어떤 미래학자가 했던 말이 오래 귓가에 맴돌았다. 그렇게 새로운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나의 가장 큰 인생 문제는 늘 늦는다는 것이다. 나무늘보처럼 움직이지 않고, 새로운 걸 도전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일들이 내 눈 앞에서 펼쳐지는 순간에, 그때서야 달라진다는 모종의 패턴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난 눈으로 뭔가를 보기 전까지, 주변에서 아무리 좋다고 한들, 주변에서 권유한들, 남들이 바쁘게 움직인들, 따라 하지 않았다.
변화를 싫어하는 나무늘보.
우연 같았던 일들이 연속적으로 스쳐가면서, 나에게도 작은 변화가 왔다. 그 시작이 남들보다 몇 곱절 느리다는 말에도 완전 공감이다. 난 늘 느렸다. 어렸을 때부터 달리기도 꼴찌를 놓쳐본 적이 없고, 사회화 과정도 늦었다. 난 철도 참 늦게 들 것 같다. 뭐든 참 느린 게 나의 단점이고, 그럼에도 시작은 해보았다는 게 장점이다.
주변에선 날 보고 어이없어한다. '이제 와서?', '넌 너무 늦었어.'라는 말을 셀 수 없이 들었다. 심지어 지금보다 열 살은 어린 순간에도 들었다. 시간이 지나서 보니, 그때 나를 말리던 사람 중에 그 어떤 취미를 가졌거나, 새로운 커리어를 쌓은 사람이 없었다.

나를 말리는 사람이 있다는 게, 변화를 한다는 게 그나마 반가운 것 아닐까? 한 주를 정리하는 지금, 생각이 많은 일요일 밤이다. 내일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