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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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스로 아주 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좋은 삶은 결코 오지 않는다.
연속극 주인공의 취향에 내가 주목한 이유는 '좋은 것'에 대한 욕심 때문이다. '좋은 삶'을 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하고, 싫어하는 것을 줄이면 된다. 제발 '좋은 것'과 '비싼 것'을 혼동하지 말자! 자신의 '좋은 것'이 명확지 않으니, '비싼 것'만 찾는 거다. 요즘 여수의 내 삶에서 가장 '좋은 것'은 '삶은 계란'이다. '삶은 계란'을 아침에 아주 맛있게 먹는 것은 내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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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삶아야 좋은 거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참 곤란하다. 그러나 맘에 들지 않는 '삶은 계란'은 언제나 분명하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좋은 삶'이 어떤 것이냐 물으면 대답하기 힘들다. '좋은 것'은 항상 애매하다. 그래서 '그냥 좋다'라고 하는 거다. 그러나 '싫은 것', '나쁜 것'을 구별하는 것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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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을 추상적으로 정의하고, 각론의 부재에 괴로워하기보다는 '나쁜 것', '불편한 것'을 제거하자는 생각은 독일의 오래된 실용주의 전통이다. 1920년대 '바우하우스'에서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FFE(Form folgt Funktion) 디자인 원칙 강조되었다. 삶을 불편하게 하는 불필요한 장식을 죄다 제거하자는 이야기다.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아돌프 로스는 아예 "장식은 죄악이다"라고 했다. 현대 미니멀리즘의 선구자인 디자이너 디터 람스도 자신이 추구하는 디자인을 한마디로 '좋은 디자인'이라고 정의했다. "적지만, 더 좋은"이라는 그의 디자인 철학은 오늘날 애플의 모든 스마트 기기 디자인에 적용되었다. 여기서 미니멀리즘이란 무조건 줄이는 게 아니다. '나쁜 것'을 줄이는 거다!
행복 혹은 '좋은 삶'에 좀 더 실천 가능한 방식으로 접근하자는 이야기다. '싫은 것', '나쁜 것', '불편한 것'을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하나씩 제거해나가면 삶은 어느 순간 좋아져 있다. '나쁜 것'이 분명해야 그것을 제거할 용기와 능력도 생기는 것이다. '나쁜 것'이 막연하니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참고 견딘다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내 행복이나 기분 따위에는 관심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계란을 삶는다.
나는 오늘도 내일 아침 메뉴를 고민한다. 아침밥을 생각하는 건 너무나 설레는 일이다. 내일 아침 메뉴는 미나리 전과 꽃게탕 당첨!(주말의 여유는 셀프 먹방과 함께)
지각을 해도, 아침을 간단히라도 먹거나 손에 들고 가는 아침밥 열정은 얼마 전 엄청난 치통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삶의 너무나 힘든 '잠깐의 순간'을 제외하고는 '아침밥'은 나에게 하루를 시작하는 소중한 의식 같은 일이다. 그것도 빵이 아닌 밥으로 아침의 문을 연다.(엄마는 빵을 좋아하셨지만 나는 밥이 더 좋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일을 먼저 해야, 하기 힘든 출근과 같은 다음 과업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좋은 것'과 '싫은 것'을 구별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가장 '좋은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주말엔 밀린 숙제처럼 일주일치 반찬과 국을 몰아서 만들고, 냉장실과 냉동실을 채운다. 밥도 한 번에 많이 해서 한 공기씩 얼려둔다(햇반처럼). 사람을 덜 만나는 코로나 시기에는 요리의 빈도가 2~3일에 1번으로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요리를 하는 이유는 반찬집의 맛이 엄마 손맛과 다르고, 그리고 나의 먹성은 가게보다는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이 경제적(?)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냉장고에 남은 재료들이 생긴다. 그러면 다시 유튜브에 검색해보면 쉽지만 너무 맛있는 새로운 요리를 만난다.
행복에 관련한 주제로 책과 심리학 영상을 자주 보고, 듣고 있다.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재미'와 멀어졌다. 그리고 가끔씩 이런저런 피곤한 일들이 겹치면, 쉽게 우울해지기도 한다. 혼자라서 더 자유로운만큼, 자칫하면 나태함과 우울이라는 수렁에도 쉽게 빠질 수 있다. 빠지는 것도 셀프! 그곳을 걸어 나오는 것도 셀프!
적극적으로 재미를 찾기로 했다. 그런데 재미도 해본 게 있어야 알 수 있다. 많이 먹어봐야 더 맛있는 요리나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갖고, 문화 경험이 많아야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생겨난다. 예전에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었다.
"막상 시간이 생겼는데도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하고 싶은 게 없어." 늘 일에 바쁘고, 가정을 챙기느라 바쁘고 피곤해했다. 하지만 시간이 생겨도, 막상 뭘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서 당황스럽다고 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 지를 알아야 그다음에 하고 싶은 것이 생긴다. 평소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찾지 않으면 어쩌면 '좋아하는 것'인지 무엇인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열심히만 살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너무~ 흘러서 더 아득해진다.
내가 뭘 좋아했더라?
그동안 나는 그저 주어진 일을 그때그때 열심히(?) 했다. 일에 있어서는 성실하다는 평가도 들었지만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갈수록 허무해졌다.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같은 평소와 다른 시간이 찾아왔다. '제주도 한 달 살기'처럼 완벽한 새로움은 아닐지라도 같은 곳에서도 다른 생활이 시작되었다. 일상의 만남과 사람들을 한 번에 멀어지는 그런 단절의 시간이 온 것이다. 그동안의 나를 둘러싼 사람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나를 바라보는 중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대면하기를 피했던 나의 단점과 습관까지 모두 바라보는 연습 중이다.
엉성한 피아노 실력이지만 평소에 어려워서 헤매던 부분을 부드럽게 연주한 날은 셀프 칭찬을 한다. '오~정말 늘었어'. 예전보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 같은 조건, 다른 느낌!
레시피 참조
하루한끼 - 양배추 스테이크 https://www.youtube.com/watch?v=iQV5_WJr05w&t=140s
백종원의 요리비책 - 토마토계란볶음 https://www.youtube.com/watch?v=pTvMsM2v1tg&t=526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