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나의 문화유산답사기9 서울 편1'
1. 궁궐의 발견
서양에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면 동양엔 종묘가 있다.
- 시라이 세이이치 -
p. 28
*종묘의 발견 *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혼을 모신 사당으로 일종의 신전이다. 유교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으로 분리되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덤을 만들어 백을 모시고 사당을 지어 혼을 섬긴다. 후손들은 사당에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올리며 자신의 실존적 뿌리를 확인하고 삶의 버팀목으로 삼는다. 역대 임금의 신주를 모신 종묘는 곧 왕이 왕일 수 있는 근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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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는 조종(祖宗:임금의 조상)을 봉안하여 효성과 공경을 높이는 것이요, 궁궐은 국가의 존엄성을 보이고 정령을 내는 것이며, 성곽은 안팎을 엄하게 하고 나라를 굳게 지키려는 것으로, 이 모두 나라를 가진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천명을 받아 국통을 개시하고 여론을 따라 한양으로 서울을 정했으니, 만세에 한없는 왕업의 기초는 실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p.126
궁원(宮苑) 제도가 사치하면 반드시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정을 손상시키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고, 누추하면 조정에 대한 존엄을 보여줄 수 없게 될 것이다. 검소하면서도 누추한 데 이르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운 데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검소란 덕에서 비롯되고 사치란 악의 근원이니 사치스럽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검소해야 할 것이다.
- 정도전, 조선 건국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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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의 아름다움은 궁궐 건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백제의 미학이자 조선왕조의 미학이며 한국인의 미학이다. 조선시대 선비문화를 상징하는 사랑방 가구를 설명하는 데 '검이불루'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없고, 규방문화를 상징하는 여인네의 장신구를 설명하는 데 '화이불치'보다 더 좋은 표현이 없다. 모름지기 우리의 DNA 속에 들어 있는 이 아름다움은 오늘날에도 계속 계승하고 발전시켜 일상에서 간직해야 할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미학이다.
2. 사람의 재발견
1) 태종
p.31
종묘가 창건된 지 15년 후, 태종은 디자인과 구조를 완전히 바꾸며 종모의 면모를 일신했다. 태종은 일(一) 자 형태의 긴 건물 양끝에 월랑(月廊)을 달아 짧은 디귿 자 형태로 만들었다. 월랑이 달림으로써 종묘는 사당으로서 경건함을 얻고 건축적 완결성을 갖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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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태종은 우리나라 역대 임금 중 통일신라 경덕왕과 함께 치세 중 건축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 왕이다. 경덕왕은 경주에 불국사와 석굴암을 세웠고, 태종은 창덕궁을 건립하고 경복궁에 경회루를 조성했으며 종묘의 형식을 완성했으니 두 분이 우리 문화유산 창조에 이룬 공은 실로 크고도 높다.
특히 태종은 건축에 높은 식견과 안목을 갖고 있었다. 그는 미천한 신분의 박자청을 공조판서에까지 등용해 수도 한양의 건설 공사를 주도하게 하였으며, 신하들이 박자청의 무리한 공사 진행을 성토할 때에도 그를 끝까지 보호해주었다. 창덕궁 인정문 밖 행랑이 잘못 시공되었을 때는 그를 하옥시키기도 했지만 이내 다시 풀어주었다.
2) 정조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만 개의 냇물에 비치는 달의 주인)
p. 302
달이 물속에 있어도 하늘에 있는 달은 그대로 밝은 것과 같다. 달은 각기 그 형태에 따라 비춰줄 뿐이다. 물이 흐르면 달도 함께 흐르고 물이 멎으면 달도 함께 멎고, 물이 거슬러 올라가면 달도 함께 거슬러 올라가고 물이 소용돌이치면 달도 함께 소용돌이친다. 거기에서 나는 물이 세상 사람들이라면 달이 비춰 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사람들 각자의 얼굴이고 달은 태극인데 그 태극은 바로 나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바로 옛사람이 만천(萬川)의 밝은 달에 태극의 신비한 작용을 비유하며 말한 뜻이 아니겠는가.
궁궐의 도시 서울에 살면서도 궁궐을 몰랐다. 서울의 5대 궁궐 중에 유일하게 경복궁을 다녀온 것 이외에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이 책을 우연히 읽게 되면서, 나의 무지와 드라마에서 본 단편적 사실과 장면이 준 이미지의 환상을 깨 주었다. 그것도 산산조각으로!
역사 시간에 조선을 건국한 후, '왕권 강화'라는 한 단어로만 기억했던 태종의 건축학적 식견에 너무 놀랐다. 무관 출신, 활쏘기와 같은 강한 이미지만을 생각했고, 드라마 속에서도 권력욕에 사로잡힌 인물로만 기억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궁궐의 도시, 서울은 태종의 작품이다.
태종의 건축학적 미학과 식견이 궁궐의 도시, 서울을 만들었다. 세종대왕의 아버지로만 기억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태종의 업적을 이 책이 아니었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이 책의 매력은 '책의 내용을 요약할 수 없다,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건축학적 아름다움, 역사, 심리학 등등 한 권의 책 안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실과 전문가적 식견과 궁궐 곳곳의 사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 권의 책으로 이렇게 많은 분야를 다룰 수 있다는 것, 새로운 세상을 펼쳐줄 수 있다는 매력이 유홍준 작가님의 저력이다. 글은 단순한 글자가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로 다가온다. 한 사람의 마음에 궁궐 안, 책 속에서 언급한 곳을 바라보고, 걷고 싶다는 마음을,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작가님께, 이 책을 추천해 준 OO언니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인생 답사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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