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살 일기장 겸 다이어리 감상문
오늘 책꽂이 구석에서 28살에 썼던 다이어리 겸 일기장을 만났다. 그리고 몇 장 읽어보니, 한숨이 나온다.
일기장에는 해야 할 일과 결과, 여행 간 장소와 날짜만 적혀 있었다. 거기다 중간중간 '회사 선배님 말씀을 적고, 더 잘해야지, 이번엔 이걸 고쳐야지!' 하는 다짐이 적혀 있었다.
이래서 내가, 내 인생이 가시밭길을 스스로 걸어갔구나. 28살 일기장을 지금의 내가 읽고 느낀 한 줄 요약이다.
분명 to do list와 결심만 적었는데, 왜 이렇게 생각했을까? 자기 계발서를 열심히 읽은 티가 조금은 묻어났음에도 왜 나는 그때의 나를 어리석게 바라볼까?
쉬지 않고 걷고 있다고 그것만으로 만족했다. 내가 지금 어디로,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몰랐다. 그곳이 낭떠러지인지, 막다른 길인지 보지 못했다. 옆에 있는 사람이 친구인지, 적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동행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회적 무지를 넘어서 인간적 무지의 단계를 걸어간 이유에는 글로 나를 표현하지 못했다. 난 오래전부터 글쓰기를 싫어한다. 브런치에 오기 전까지 내가 문장으로 쓴 것은 입사지원서, 대학원 원서이다. 즉, 목적지향적인, 사무적인 글이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글쓰기였다.
왜 내 감정에 대해서, 내 주변의 풍경을 적지 못했을까? 해마다 다이어리를 샀지만, 다이어리에는 일정 이외의 공간은 비어 있었다. 감정이 없는 사실만 적혀 있었고, 하반기는 그나마도 적지 않았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건? 겉으로는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고, 안으로는 나를 대면할 용기가 없었다.
나의 감정을 글로 적는다 = 내가 나를 대면한다
그러나 나는 나를 마주 볼 용기가 없다 = 고로 나는 적지 않는다
만약 내가 그때로 돌아가서 글을 적는다면 이렇게 해볼 것 같다. 예를 들면, 인터넷 쇼핑으로 산 모자를 하나의 이벤트로 보고, 이렇게 쓸 거 같다.
1. 택배 도착 (이벤트의 시작)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로 모자가 도착했어~
2. 내용물 확인 (이벤트로 인한 사실과 감정을 분리하기)
1) 사실 - 주문한 물건과 배송 상태가 확인
2) 감정 - 기쁨 : 모자가 나에게 어울려. 내일 모임에 쓰고 나가볼래
- 실망 : 화면과 달리 소재가 너무 얇아서 힘이 없음. 모자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3. 과정(사실적인 면) - '반품' 또는 '구매 완료' 선택
4. 결론(사실과 감정의 하모니 : 정의하고, 의미 부여하기)
- 내가 이 모자를 필요해서 산 걸까?
- 어젯밤에 지름신이 내려오시고, 충동구매를 했다. 요새 충동구매가 점점 늘어난다. 패션에 관심이 생긴 걸까? 아님 내 마음의 허기를 쇼핑으로 채우는 걸까? 지금 내 마음의 불안이 뭘까? 그건 인간관계 스트레스였을까? 업무로 인한 피곤함일까?
이렇게 내 마음을 한 번이라도 써봤다면 어땠을까? 이때 나는 나에게 묻지 말고, 타인에게 물었다. 멘토를 찾았다.
10년이 지난 지금에서 다이어리에 적힌 글에서 보는 장면은? 사람인 줄 알고 놀랐던 '참새'가 나였고, 사람으로 보였던 허수아비가 그 '멘토'였다. 그때는 사람 보는 '안목'이 없었다. 그때 내 옆에 소시오패스같은 사람들이 있었던 이유는 운이 나쁜 것 이외에 나의 불안감과 사회적, 정서적 무지가 있었다. 마음이 나약하고, 생각이 뿌연 미세먼지처럼 흐릿해지면, 불운은 그렇게 묶음 포장으로 배송된다.
나의 감정과 사실을 분리하고,
글로 적어본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글을 쓴다고,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내 앞의 문제가 한 번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대신 문제를 인식하게 되고, 고통스러워도 해결하려고 시도하게 된다. 그 전환점의 시작이 '감정의 글쓰기'다. 글쓰기 책에서 흔히 말하는 '치유의 글쓰기'라는 단어를 굳이 나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렇다. 나를 치유하고, 일어서게 만드는 힘과 능력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가족, 친구, 멘토도 이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없다.
그때의 나에게, 그리고 나처럼 방황하는 지금의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감정의 글쓰기. 그 글이 엉성하고, 완전하지 않은 문장이라 할 지라도, 일단은 쓰고, 나에게 내가 다 털어놓기.
그때의 나는 친구나 선배들에게 말하기라는 수다로 감정을 풀어냈다. 결론은 '허무함', '우울함'... 일시적인 진통제처럼 잠시 고통을 잊을 수 있지만 원인은 치료되지 않았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이자에 이자를 더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래도 나! 넘어져도, 웃어도 그래도 나니까.
from 글쓰기를 너무 싫어했던 초보 브런치 작가의 양심 고백 겸 옛날 옛적 일기장 감상과 반성문
https://www.dispatch.co.kr/546155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7630075&memberNo=126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