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

보도 새퍼,'멘탈의연금술'

by 그럼에도
왜 또 나야? 왜 항상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Alexej Jawlensky, 'Portrait of a Girl'

(전자책 88%)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곧장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이 최선이다. 망설이거나 자기 연민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이는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에너지만 허비할 뿐이다.


자신을 무력한 피해자라 여기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운명을 극적으로 묘사함으로써 타인의 연민을 구하지도 말라. 당신이 원하는 것은 연민이 아니라 존중이니까.


다음의 사실을 잊지 말라. 가슴에 새겨라.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맡기면 더불어 그 사람에게 권리도 맡기는 것이다.


당신 삶에 대한 권리는 당신에게만 있다. 당신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결정하는 것은 오직 당신만의 권리다.


+ (중략)


삶은 늘 고통스럽다.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


모두가 현실에 안주하고자 할 때, 모두가 변화와 도전을 꺼려할 때, 이에 접근하는 사람에게는 경쟁자가 없다. 경쟁자가 없어 독주하는 승자가 된다.


내가 만난 멘탈의 연금술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나간다 해도, 삶은 결코 수월해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당신은 점점 이기기 어려운 상대가 될 것이다."


삶은 결코 만만해지지 않는다.


유일한 성공 전략은 당신이 점점 강해지는 것이다.

'나는 오늘 누구를 만난 걸까?'


몇 시간을 함께한 자리에서 오래 대화를 나눈 것 같았는데 집에 돌아와서, 귓가에 맴도는 주제는 '인맥'이야기였다. 그날 만난 용용의 말속에 본인을 쏙 빼고,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강조한 것만 기억에 남았다.


기억에 남았던 그 이야기는 이렇다. '나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로 시작한 인맥 자랑이었다. 인맥을 통해서 업무에 도움을 얻는다는 이야기와 얼마 전 다쳤을 때에도 인맥의 도움을 받아서 빠른 진료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등등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친구들 및 직장 동료들과 여행 갔었던 사진과 추억을 한참 들려주었다.


낯선 타인에게서 '과거의 나'를 만났다.


예전의 나는 '인맥'을 꽤나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모든 경조사에 프로 참석러로 참석한 이유도 알고 보면 어디선가 듣고, 책에서 읽었던 '인맥 관리'였음을 인정한다. 인맥이 뭔지도 모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열과 성을 다해서 전념했었다.


'왜 나는 그렇게 인맥에 집중했을까?'


어설프게 읽은 자기 계발서와 회사에서 만난 '워나비 라이프'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 것 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되고 싶은 나'와 '현실의 나'는 너무나 달랐다. 그때 나는 취향과 취미가 없는 무색무취한 물과 같은 상태였다. 해본 게 없고, 뭐가 좋은지, 나쁜 지도 알 수 없는 순진무구를 넘어선 상태 ㅠㅠ


유행하던 해외여행지를 휴가 때마다 갔었다. 그때 자주 어울리던 부유한 사람들이 즐겨 가던 장소, 맛집에도 종종 가보았고, 그들의 취향도 따라 했었다. 자주 어울리다 보니, 타인의 생각을 나의 생각처럼 말했던 과거의 20대 후반. 남과의 비교와 허영심이 극에 달했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현실의 나'가 자신이 없고,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실은 너무나 나약하고, 초라했다. 어떤 취향도, 확고한 생각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대화에서는 내가 아닌 타인을 나 대신 등장시키며 이야기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들이 마치 나인 것처럼.


그때 내 모습은 마음속 깊이 꽁꽁 숨겨둔 추태였다. 그리고 그 지질한, 오래 숨긴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쓰는 순간이 왔다. 일기장에도 적지 못했던 그때 그 마음을.


'인맥'이라는 단어를 우습게 여기지도 않지만 대단히 여기지는 않게 된 이유는 하나다. '인맥의 보고'라던 대학원을 졸업한 후 '현타(현실 인식 타임)'가 찾아왔다.


인맥은 노력한다고, 갖고 싶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어떤 위치에 있거나, 부유한 재력이 있거나 또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서 나의 도움이 누군가에게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순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었다.


인간적인 '정'이 아닌 사회생활에 필요한 적당한 '조건'을 눈으로 직접 보고, 깨닫게 되었다.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나는 사회생활에 스쳐가는 작은 인연일 뿐. 물론 인간적인 정이 오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나의 짧은 경험으로는 소수의 사례였던 것 같다.


부디 인맥의 도움 없이도 내가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강인함'과 인맥의 도움을 받더라도, 맹목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상황을 판단하는 '분별력'있는 사람으로서 살아나가길 바라며. 인맥을 내려놓고, 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며칠 전, 감춰두었던 지난날의 나를 타인의 언어로 만났다. 그리고 '나 자신'을 드러내기 힘겨울 때,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나 타인을 무대에 등장시키는 그 이야기의 서사 구조를 읽게 되었다.


인간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언제라도 흥미가 있는 일이었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 양귀자, '모순'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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