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움

이국환,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

by 그럼에도

p.55

은퇴 후 20~3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우리는 지금까지 인류가 은퇴하고 이렇게 오래 생존한 적은 없다는 사실, 그리하여 어떤 세대로 경험하지 못한 긴 외로움에 직면해야 한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외로움에서 나아가 고독을 만나야 한다. 영어에서 외로움(loneliness)이 고립과 단절을 의미한다면, 고독(solitude)은 독립과 재생의 의미에 가깝다. 비슷하게 쓰이지만 뜻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럼에도 고독사라는 용어 때문인지 '고독'이란 단어가 우리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Michael Ancher, 'Anna Ancher returing from the field'

원래 고독이란 말은 긍정적인 뜻이다. solitude의 어근은 sol은 본디 Sole, 즉 태양을 뜻한다. 고독에는 태양과 같은 유일하고 고유한 존재로서의 자존감이 서려 있다.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고, 완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순간이 고독이다.


+ 중략


만약 혼자 사는 사람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텔레비전부터 켠다면, 그것은 혼자 있기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무리 짓기를 좋아한다. 혼자 있을 때 조용하던 사람도 무리 지으면 떠들썩하고 방종한다. 무리 짓기 좋아하는 자는 약한 자이며, 이런 자들이 모인 문리는 무례하기 마련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인간을 단단하게 만든다. 일고일고(日孤日高), 한 번 고독할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나아간다. 우리는 고독을 거쳐 더 나은 자신이 되고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살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 타인에게 더 개방적이고 공감 능력이 높았다는 연구 결과는 이러한 사실을 방증한다. 관계에 지치면 어떤 타인도 소중할 수 없다.


+


그럼에도 자신을 동반자로 믿는 사람에게 고독은 힘이 된다.


두려워하면 외로움이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고독이다.



외향적인 사람을 동경했고, '무리 생활(?)'에 익숙했던 사람으로서 작년 봄은 나에게 너무 괴로웠다. 당황스럽게 시작한 그 시기는 1년 반을 지나고 있다. 다시 확진자 그래프의 수치가 무섭게 올라갔다. 익숙해진 것인지, 잔여 백신이라도 먼저 접종한 행운이 있어서인지 작년보다는 안정된 자세로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그럼에도 아쉽다.


드디어 새로운 배움에 도전해보려던 순간, 4차 유행이 왔고, 아쉽지만 포기했다. 몇 년 전 우연히 대학로에서 두 편의 연극을 보았다. 생동감, 살아있는 단어와 배우의 에너지가 너무 멋있었다. 막연히 배우에 대한 동경이 생겼다. 그러다 주변에서 아마추어 연극배우로 활동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언젠가 아마추어로 무대에 오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러다 기회가 왔다. 연극을 배우는 기회가 왔고, 등록했다. 그리고 대본 리딩도 1회를 했다. 코로나 확진자자가 폭풍처럼 늘어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다음 주에 있을 '거리두기 4단계'매뉴얼이 시행되는 지역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매뉴얼 행간의 의미는 명확했다. '사적 모임과 만남을 최대한 자제하라'는 메시지는 아무리 마스크를 단단히 쓴 상태지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배움의 특성상, 발성 연습과 동작이 있으므로 지금은 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아쉽지만 이번 위기가 지나면, 다시 도전하리라! 그리고 나는 등록을 취소했다. ㅠㅠ


대본 리딩 중에 갑자기 작년 여름,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본 그 장면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친구들 모임에서 언젠가는 '연극배우'에 도전해보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무섭게 노려보던 한 친구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눈빛이 너무 매서워서, 잊고 싶지만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늘 순하게 웃고만 있던 친구라서, 그 눈빛은 20년 가까운 시간 중에서 처음 본 표정이었다.


다른 친구들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는 끼가 없잖아. 너는 연예인 같은 외모가 아니잖아'등등의 말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정말 나는 어떤 외향적인 모습이나 타고난 끼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평범한 인간이다. 어쩌면 지금 나이에 미혼이라니, 그 친구들이 보기엔 이 점 하나가 평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고 1년이 지나서 '대본 리딩'을 하는 장소에 앉아 있었다. 이래서 '말이 씨가 된다'는 어른들 말씀이 나왔나 보다.


지금은 포기했지만 다시 도전할 것이다. 4차 유행으로 그 시기는 조금 더 미뤄졌을 뿐. 이렇게 내가 달라진 이유를 뭘까? 굳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이유는 '고독'이다. 오롯이 혼자 있으면서, 그동안 외면했던 '나'라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이젠 나도 외향적이라고 생각했고 어떤 면에서는 자부했었다. 일을 하는 내 모습은 외향성을 타고난 사람 같지만 집에 있는 나는 완벽한 '내향성'의 사람이었다. 혼자서 1년 반을 회사와 집만을 오고 간 '칩거' 비슷한 어쩌면 '은둔형 외톨이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살다가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 지인, 친구들 등등. 그동안의 노력과 추억이 물거품이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관계는 작아졌지만 반대로 나의 에너지는 더 응축되어, 커져 가고 있었다.


상상만 했던 것, 그냥 해보고 싶었던 것, 궁금한 건 모두 해볼 거야. 1년 반을 고독한 시간 속에서 살아가면서 오히려 방향성은 명확해졌다. 지금의 시간은 나에게 '세상의 목소리'를 음소거하고, 나의 소리가 크게 울리고 있었다.


* 홀로움, 외로움을 통한 혼자 있음의 환희 *

- 시인, 황동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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