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

강신주외 6인,'나는 누구인가'

by 그럼에도

p.33

자본주의 핵심은 자본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입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지요.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살 때를 떠올려보세요. 소비를 하는 동안 기분이 아주 좋지요. 돈을 쓰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내게 스타일이 좋네, 안목이 뛰어나네, 멋스럽네 등의 말을 끊임없이 퍼부어댑니다. 소비에 대한 욕망의 바탕에는 그런 심리가 깔려있습니다. 일종의 '주인 의식'같은 것이지요. 돈을 쓰는 입장이 됨으로써 공주 대접, 여왕 대접, 마님 대접을 받습니다.

+ 중략


보통 시인들이 자본주의를 '집어등'에 비유합니다. 집어등은 야간에 오징어나 고등어, 정어리 같은 물고기를 잡을 때 불빛을 따라 모여드는 물고기의 성질을 이용해 켜 두는 등불을 말합니다. 실제로 속초에 가보면 집어등을 켜놓은 배 가까이로 오징어들이 미친 듯이 달려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하라는 시인은 자본주의에 포획된 인간을 "오징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쇼윈도의 밝고 화려한 세계를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것이지요. 인터넷을 켜고 포털사이트로 접속하는 순간 온갖 쇼핑몰들이 집어등을 켜고 유혹합니다. 그 세계에 한번 발을 들이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 집어들의 유혹에 사로잡혀 누나도 잡혀가고, 이모도 잡혀가고, 삼촌도 잡혀갔으니까요. 하지만 자본주의의 유혹은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너무도 매력적으로 보여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금방 빨려 들어가지요. 저 옷을 사 입어야만 더 멋있어질 것 같고, 저 차를 타 줘야만 더 폼이 날 것 같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 중략


인문학자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자본주의를 통제하지 못하면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획일화된 노예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취업에 목숨을 걸고 전공에 관계없이 토익, 토플을 죽도록 공부합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여유 따윈 아예 생각조차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한순간도 자신의 인생에 주인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돈을 얻기가 힘들면 힘들수록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보다 타인의 요구에 맞춰 살게 됩니다.


+ 중략


그러면 현대인들이 봉착한 몸의 소외, 욕망과 능력의 이 간극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요. '동의보감'은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합니다.


+


무조건 덜 먹고 덜 쓰고 모든 것을 덜어내고 배설해야 합니다. 배설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익숙한 것과의 결별입니다. 이 결별을 잘하지 못하면 숱한 과거를 질질 끌고 다녀야만 합니다. 미련과 집착으로 현재를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는 것이 현대인들이 앓는 공통의 질병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zgSVHYCLu4&t=582s

요새 이 집에서 '마인드 컨트롤' 영상을 봅니다


예전에 즐겨보던 마인드 컨트롤 관련 영상에 나오는 주인공은 늘 나보다 윗세대였다. 주변에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도 또래 친구보다는 선배나 윗세대인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는 혼자서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보다는 주변에 의지하는 나의 성향과도 관련이 있다. 나라는 사람을 들여다보면, 팔랑귀와 주변에 대한 수용성(?)이라는 2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굳이 이성적인 이유를 더하자면, 또래랑 대화하면 마음은 편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를 나처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나이와 경험이 많은 사람들의 현실 조언이나 판단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나는 선배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20살에 나는 서울에 올라왔다. 어떤 일이 생기면, 가족보다는 혼자 행동하고, 판단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이런 환경은 독립적인 나로 성장하기 좋은 환경이었지만, 반대로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누군가에 기대서 성장하는 덩굴식물, 등나무

여름이 되면 등나무 그늘에 앉아있는 걸 좋아한다. 포도송이 같은 연보랏빛 꽃을 바라보는 것도 즐겁고, 등나무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꽃향기는 꽃의 색상만큼이나 연하고 부드럽다. 등나무 그늘 밑 벤치에서 바라보면, 등나무는 저렇게 쇠기둥을 지지대로 삼아서 가지를 넓게 드리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전 한문 시간에 배웠던 '갈등(葛藤)'이라는 단어의 뜻은 '칡 나무 갈'과 '등나무 등'이다. 둘 다 같은 덩굴식물인데 등나무는 왼쪽에서부터 감아 올라가고, 칡 나무는 오른쪽부터 감아 올라가는 특성이 있기에 둘이 같은 지지대에서 만나면, 갈등! 즉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예전 일들을 떠올려보면 그동안 겪었던 일들과 감정은 칡 나무와 등나무처럼 너무 가깝게 얽히고, 설킨 관계였기에 갈등이 깊었던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감이 없었고, 지나치게 가깝고, 의지했다는 점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하지 않았을까?


아주 오랜 시간 나를 몰랐다. 내가 등나무처럼 덩굴식물인 줄 모르고, '왜 나만 이렇게 힘든 걸까? 왜 나만 이렇게 꼬이는 걸까?'라며 오랜 시간 힘들어했었다.


등나무에서 대나무로 살아가는 법? 예전엔 마인드 컨트롤, 자기 계발 영상도 나보다 윗세대인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면, 요새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의 영상을 종종 보게 된다. 나이와 생각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처음엔 못난 마음이 들었다.


즐겨보는 영상 속 주인공들은 ‘이제야’ 이런 걸 알았다고 말한다. 나는 ‘지금(?)’에서야 아는 것들을 훨씬 더 어린 친구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상대성 원리처럼 안 그래도 늦은 내가 더 늦게 보여서, 좀 얄밉기도 하고, 나 스스로가 좀 부끄럽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마음도 작아지고, '늦더라도 모르는 것보다는 낫지'라는 생각을 갖고, 슬쩍슬쩍 보고 있다.^^;;


세상은 넓고, 현명한 사람은 많다. 나이와 그 어떤 것에 상관없이 내가 좋으면, 그냥 배우면 된다. 여기에 사람과의 관계에서 적당한 틈, '여백의 미'를 더하고.


타인의 시선과 자본주의라는 세상에서 '소비 요정'으로 살다가도, 책에서도, 즐겨보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도 이따금씩 삶의 제동을 걸어본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kimvo97&logNo=221527453378https://www.pinterest.co.kr/pin/338614465715336383/

매거진의 이전글엉켜있는 실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