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 '걷는 생각들'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
I'm an alien. I'm a legal alien.
https://www.youtube.com/watch?v=d27gTrPPAyk
p.125
언제부터였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은. 상사에게는 상사라서 대들지도 못하고, 부하직원에게는 그/그녀가 삐질까 봐 야단도 못 치고. 불합리한 것 같은데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거나 또는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싶어 항의도 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눈치 보이고 마음 쓰인다. 언제부터 나는 이렇게 소심한 사람이 된 걸까? 원래부터 이렇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 중략
원래 착한 사람이 아닌데 우물쭈물 말 못 하는 사이에 나는 어느새 착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인지 판단하려고 생각하는 사이에 모든 것은 휙 지나가고, 종결되고, 걱정하는 나만 소심하게 남는다. 소심함의 동반 증상은 '지랄 맞음'이다. 자꾸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에잇, 그때 한마디 했어야 했는데.
왜 나는 시원하게 대꾸하지 못했을까?
왜 못된 사람들, 뭐든 자기만 생각하는 애들이 원하는 다 갖고 잘되는 걸까?
생각할수록 화가 나며 지랄 맞게 까칠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기껏 까칠해봤자 역시 소심해서 잘 올라오지 않는 점퍼 지퍼에게 화를 낸다던가, 분노지수만큼 치약을 꾹 눌러 짜서 욕실 거울을 현대미술 작품으로 만들어버리는 '누워서 침 뱉기 형' 분풀이가 대부분이다.
이런 나의 성향에 혼자만의 아침 산책은 어쩌면 내가 가장 편안한 행위다. 사람 만나는 것이 즐겁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애써야 하는 내겐 누군가와 함께 무엇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소심한 사람이 모임을 이끌고 있다면 그 모임은 어떨까?
학부 때부터, 사회에 나와서도 모임의 구성원으로는 참여해도 그 어떤 목소리를 내지 않던 극소심 쟁이인 나는 어느 날, 수업과 모임마다 반장, 조장, 부반장 등의 역할이 부여되었다.
이런 마법 같은 일이 왜 자꾸 일어날까? 난 그저 대학원에 입학했고,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다수결의 투표로 어느 날, 나는 22명 모임의 조장이 되었다. 너무 당황해하는 나에게 지나가던 동기가 뒤에서 한마디 했다.
" 왜 너한테 사람들이 역할을 맡기고 싶어 하는 줄 알아? 그건 네가 너무 욕심이 없어서야. MBA를 들어온 욕심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욕심 없어 보이는 너의 존재가 엄청 튀거든."
동기 당당 오빠는 몇 번 얼굴 보고 식사를 같이 한 사이인데도, 나도 파악 못한 나의 위치(?)를 너무나 정확히 알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그 말은 정확했다.
욕심 없어 보이고, 말 잘 듣게(?) 생긴 극소심 쟁이가 그날을 시작으로 처음 경험해 본 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사람들 앞에서 친절하고도 다정한 사람이 뒤에서 돌변하는 모습도, 가끔 너무 띄어 주워서 하늘에 닿을 것 같은 느낌도, 고마워하는 누군가의 칭찬과 격려를 듣기도 하고, 역할을 마지막까지 혼자 챙기는 장면도 나의 몫이었다.
소심함의 가장 힘든 점은 배려다. 여기저기 배려하다 보니, 더 소심해진다. 소심한 사람으로서 모임에서 참석하기 힘들어하고,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더 크게 보인다. 먼저 말 걸고, 연락하고, 물어보고. 그러다 너무 앞서가는 사람들을 중재하고, 중간에서 조율하는 일종의 facilitator였다.
그러다 나를 잃었다. 소심한 사람은 나를 배려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미룬다. 대가족의 첫째 딸처럼, 어떤 날은 엄마처럼 이것저것 챙기다가 결국엔 방전되고, 세상 우울한 생각과 마음이 펼쳐진다.
내 인생에 갑작스러운 '역할 부여'도 소심함의 세계에서 나를 탈출시키지는 못했다. 다만 소심함과 대범함의 줄다리기 양면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소심함 속에 소중한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노래 가사처럼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내가 되어야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