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진 가지는 두 번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

우종영,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by 그럼에도
사랑한다면 연리지처럼

P20170507_114814657_8810D119-0B4F-4E0E-9D39-C449D31C9A0F.JPG 비자림 안 '연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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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라고 일컫는다. 연리지 현상이 일어나면 처음에는 그저 가지끼리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종국에는 맞닿은 자리가 붙어 한 나무로 변한다. 땅 아래의 뿌리는 둘이면서 지상에 나온 부분은 그렇게 한 몸이 되는 거다. 연리목은 가끔 만날 수 있지만 가지가 붙은 연리지는 매우 희귀하다.


바람에 상처를 입어 속살을 드러났다거나, 아니면 두 줄기가 살짝 맞닿아 있다가 그대로 붙어 버리는 연리지.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한번 연리지 된 가지는 두 번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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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무란 놈은 참 현명해서 그렇게 되기 전에 대부분 의기투합한다. 한쪽이 병들어 죽기 전에 서로 붙어 한 몸이 되면 혼자였을 때보다 훨씬 더 거대한 나무로 자라난다. 전화위복이랄까. 몸집이 더 커지다 보니 뻗어 갈 수 있는 가지 수도 늘어나고, 그만큼 병충해 같은 외부의 재해로부터도 강해진다.


연리지 현상이 참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쳐지기 전의 성격과 기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워낙 흰 꽃을 피웠던 가지엔 흰 꽃이, 붉을 꽃을 피웠던 가지엔 붉은 꽃이 그대로 피어난다.


+ 중략


연리지가 된 나무가 크게 자랄 수 있는 것은 따로 또 같이 그렇게 제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한 발자국 물러서서 한 몸을 이룰 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제주도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그곳은 비자림.


비자림의 공기에서 느껴지는 비자나무의 싱그러움, 붉은 흙, 푸르름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비자림 깊숙이 연리지가 있다.


'연리지'라는 단어를 예전 영화 제목으로 들어봤다. 서로 다른 나무가 가지로 이어진 나무. '영원한 사랑'느낌의 단어와 아름드리 큰 나무로만 생각했었다.


연리지를 좋아하는 이유를 굳이 설명하자면, 아름드리나무가 주는 풍성함이 좋았다. 시골에서 보는 큰 정자나무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오래된 신성스런 나무. 사방으로 뻗어 있는 가지가 주는 풍성함, 압도하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연리지 앞에 서면 우두커니 '멍'하게 바라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만약 내가 결혼을 한다면, 이 나무 앞에서 해야지'라는 혼자만의 상상을 하게 되는 신기한(?) 힘을 가진 나무, 연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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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대한 책을 읽다가, 아름드리나무로 생각했던 연리지의 '따로 또 같이, 한 번 이어지면 떨어지지 않는다'라는 특성을 알게 되었다. 서로 다른 나무 두 그루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더 힘차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나무는 눈으로 보여주고 있다.


구글 알고리즘처럼 나와 같은 생각과 관심사에 매몰되어 요즘,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며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나무의 현명함이란? 언어로 담아내기에 어렵다. 나무를 사랑한 저자처럼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배우게 되고, 배워야 하는 삶의 자세이고 지혜일 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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