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담, '이완의 시간'
p.120
니가 와 안 되는 줄 아나?니는 생각이 너무 많아.
춤추는 년이 그렇게 생각이 많아서야......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윤 원장이 천천히 입을 뗐다.
나는 샐쭉해져서 입을 내밀었다.
"저도 알아요. 그래서 차라리 공부를 해보면 어떨까, 그런 거예요."
"공부도 마찬가지 데이. 머든지 생각이 많으면 안 된다. 연애고 공부고, 세상사가 다 그렇드라."
윤 원장은 내게 연애도 하면서 인생을 즐겁게 살라고 조언했다.
홀로 자식을 키운 엄마에 대한 부채감, 현실과 세상의 관계 맺기에 서툰 주인공, 유라의 성장 서사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 넌 생각이 너무 많아."
유라가 나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생각은 너무 많고, 관계는 서툴며, 행동은 더디다.
지금 사는 집의 임대 기간이 만료되어, 새 집을 찾아야 했다. 당장 이사할 것도 아니면서, '임장'이라는 전문 용어를 써가면서, 집을 취미 삼아 보러 다니는 사람들도 있던데, 난 그 반대다. 미룰 수 있다면, 미루고 싶은 게 치과 가는 것, 이사 갈 집 알아보는 것. 아마도 이런 게으름 탓에 부자가 못된 걸까?
미룰 수 있다면 최대한 미루고 싶었지만 더는 미룰 수 없었다. 계약 기간이 두 달 반 남았다. 미리 생각해뒀던 동네는 좀처럼 집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은 그 옆 동네의 옆동네까지 점점 지도를 올려보다가, 한 부동산을 찾아갔다. 같은 동에 나온 두 집을 다녀왔다. 마침 비가 와서인지, 아니면 비어 있는 상태여서 였을까? 알 수 없는 휑한 느낌을 주던 집은 비어 있을 만한 이유를 직감으로 느끼게 해 줬다. ㅠㅠ
처음 본 부동산 사장님은 말씀하셨다. '지금 나와있는 집도 몇 집 없는데, 손님은 생각이 너무 많다고. 내년의 상황까지 어떻게 알 수 있겠냐며, 계약을 권유하셨다.' 쉽게 집값이 떨어지지도 않고, 임대 기간 중간에 나와도 집은 금방 나갈 텐데, 입지며, 가격이며 너무 고민한다는 말을 그렇게 돌려서 표현하셨다.
그렇다. 나는 일이며, 내 인생이며, 하다못해 소개팅에서도 생각과 고민이 많다. 단순한 생활임에도 생각은 언제나 무성한 나뭇잎처럼 그렇게 주렁주렁 달고 다녔다. 요가 중간중간 명상 시간에도 머릿속 생각은 떠나지 않았다.
인생의 우선순위가 없었기에 무성한 나뭇잎처럼 걱정과 불안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녔을까. 무성한 생각에 가지치기를 했다. '치안과 교통'이라는 큰 가지만 남겨 놓았다. 두 원칙의 가격은 비쌌다. 생각했던 조건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으로 두 번째로 방문한 부동산에서 바로 계약했다ㅠㅠ
'치안과 교통'이라는 중요한 원칙이 있다면, 나머지 그다음 조건들은 포기하기로 했다. 우선순위가 있다면, 선택은 쉬워진다. 물론 감수할 것도 많아지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TV에서 유행했던 '집 정리 프로그램'을 따라 해 보았다. 집 안의 쌓아둔 물건을 정리하고, 버린다는 건, 미련을 버리는 것이다. 내 마음의 애착, 집착(?), 추억, 언젠가 쓸모가 있는 물건 등등
이사라는 이벤트는 그런 미련을 갑작스럽게 정리하게 해주는 마법을 부린다. '평소와 같은 안정'을 깨는 '이사라는 이름의 위기'는 변화할 기회를 줬다. 집 안의 미니멀리즘, 마음의 미니멀리즘.
그렇게 '새집 찾기 이벤트'는 이틀 만에 끝났다. 나의 걱정 나무는 이틀간 자랐다가 사라졌다. 빠른 손절의 솔직한 이유는 나의 엄청난 결단력보다 집이 없어서...... 아파트마다 팔려는 매물은 수두룩한데, 임대할 집만 없었다. 이사 비용과 더불어 임대료 상승은 슬프지만 불확실은 사라졌다. 호갱노노 같은 부동산 앱을 보며, 심각하게 고민했던 날들이여, 굿바이!

부동산은 잘 모르지만 다수의 재계약된 집들에게는 행운이, 나처럼 집을 찾는 소수에게는 우울함이 있었지만... 게으른 완벽주의자 마음에 확실한 결론을 내린 것에 감사를.
불평, 불만 대신 대안을 찾기 위해 애썼던 한 주를 보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