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성 찾기(석불사, 불국사)

조정래, '천년의 질문 2',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

by 그럼에도
예, 그 불상이 바로 경주 불국사의 토함산 석굴암에 모셔진 불상입니다.
그 불상은 세 가지 불가사의함을 품고 있습니다.

'천년의 질문2’, p.189

첫째 그 옛날 1,200여 년 전에 어떻게 그 거대한 통돌로 불상을 조각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둘째 돌 중에 가장 강도가 센 게 화강암이고, 강도가 센 돌은 정으로 조금만 잘못 쪼아도 튕기듯 깨져나가기 일쑤인데, 그런 거칠고 센 돌에 어떻게 그렇게도 엄숙하면서도 고아한 모습과, 한없이 자비스럽고도 헤아릴 수 없이 신비스러운 미소를 새겨 담을 수 있었는지 생각할수록 기묘하기 짝이 없습니다.


셋째 그 거대한 불상의 전체 조형미와 균형감은 깜짝 놀랄 만큼 완벽하고, 그 볼륨감 또한 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생체의 탄력을 느끼게 합니다. 그 세 가지가 융합되어 석굴암의 불상은 조각 예술의 극치 미를 보여주면서 세계 불상의 으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 김대성 *

신라의 인물.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문왕 때 태어나 [1] 혜공왕 때까지 산 재상.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세상을 떠났으나, 꿈을 통해 하늘에서 환생을 알린 뒤 재상인 김문량(金文亮,?~711)의 집에서 다시 태어났다 [3]. 태어났을 때 김대성이라 써진 금으로 만든 쪽지를 손에 쥐고 있었다고 해 재상 김문량은 아이의 이름을 김대성으로 짓고 혼자 남은 어머니를 데려와 봉양했다. 새로 태어난 그는 사냥을 매우 좋아했는데, [4] 에서 을 잡아 죽인 날 밤 에 곰이 자신을 죽이려 하자 살생을 그만두고 곰의 명복을 비는 절을 세울 것을 맹세했으며 이것이 장수사다.

후에 전현생의 부모가 모두 나이가 많아 세상을 떠나자 전생의 어머니 경조를 위해 석불사(석굴암)를 짓고 현생의 부모인 김문량 부부를 위해 불국사를 지었다고 한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공사는 751년(경덕왕 10년)에 시작해서 774년(혜공왕 10년)에 끝났다고 한다.

- 나무 위키 참조 -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 석굴암과 불국사를 다녀온 경험이 전부였다. 아무런 감흥도 없던 내게, '천년의 질문'에서 말하는 '예술성의 극치미'라는 표현이 신기하고도 궁금했다. 그렇게 경주로 출발한 날 아침 비가 내렸다. 다음에 갈까도 했지만 경주에 간다는 생각에 전날부터 잠 못 자고 설렌 마음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그렇게 부슬부슬 비가 오는 날, 석굴암과 신라역사과학관으로 출발했다.


첫 목적지인 '신라역사과학관'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잠시 문을 닫은 날이었다. 개인이 사비로 운영하는 공간인 데다가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 만큼 인기 있는 곳은 아니어서 마음은 아쉬웠지만 이해는 되었다. 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 작가님의 강력한 추천의 글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신라역사과학관이 존재한다는 자체를 몰랐으니까.




신라역사과학관 내 석불사(석굴암) 모형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p.263

신라역사과학관의 석불사 석굴 모형도는 5분의 1 축적으로 1개, 10분의 1 축적으로 7개를 제작하여 석굴의 내부와 외부 구조, 그리고 현재의 상태와 원형의 추정, 학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전실의 전개와 꺾임 문제, 광창의 유무 문제 등을 모두 수용하여 그것을 모형으로 제시하고 있다.


내가 복잡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던 석굴 구조의 과학성과 치밀함은 이 8개의 모형으로 완벽하게 설명된다. 석불사 석굴을 답사하기 전에, 또는 답사한 후에 반드시 여기를 거쳐가야만 그 신비에 접근해 갈 수 있다.


석불사 석굴의 교육전시장을 만들어낸 것도 관이 아니고 민이었다. 하루에도 천만 원의 입장료를 징수하여 우리나라에서 아니 세계에서 현찰 수입이 가장 많은 석불사의 석굴을 관리하는 석굴암과 문화재관리국이 관람객을 위하여 한 일은 결국 유리장으로 막은 것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



불국사에서도 석불사(석굴암)까지는 7.5km였다. 비가 오고, 비탈길은 많이 미끄러웠다. 그래도 오늘 꼭 보고 말 리라 하는 마음에 운전대를 잡았다. 평평한 시내와 달리 토함산은 오르는 길은 높고도 험했다. 여기가 경상도인지 강원도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어떻게 이렇게 좁고, 비탈진 길을 관광버스로 오를 수 있을까?


거기다 빗길에 미끄러운 길을 오르고 또 오르다 결국 2km를 남겨두고 내려왔다. 아쉽지만 운전하는 내내 무서웠다. 운전에 집중하려고, 듣던 음악도 껐다. 몰입의 결말은 포기였다. 석불사는 아쉽지만 2주 후에 다시 오기로 기약하며, 불국사에 들어섰다.


불국사 입구의 입장료와 많은 관광객, 불국사 경내에 있는 박물관에 추가 입장료까지... 통일신라 건축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전에 입장료 가격에 조금 놀라고, 곳곳에 시주를 요청하시는 분들의 말씀이 좋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통일신라 건축에 대한 조금 더 친절한 설명문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 계단이 의미하는 것, 건축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조금 더 풀어서 방문객에게 설명해주면 어땠을까?


우리나라 경치가 좋은 곳에는 절이 있다. 공간이 예뻐서 가끔 방문하지만 불상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보살이라는 단어가 어떤 뜻인지는 알지 못한다. 익숙한 듯 낯선 공간, 절. 며칠 전 방문했던 국립중앙박물관의 친절한 설명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나만 모르는 게 아니었어^^;;)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불국사와 석불사를 제작할 당시에 권력의 힘은 얼마나 강했던 걸까? 불국사의 계단은 우리가 평소에 걷는 계단의 높이(평균 18cm) 보다 훨씬 더 놓다. 홍익대 건축학과 유현준 교수님은 글에서 계단은 권력을 의미한다고 말씀하셨다. 토함산, 차로 오르기에도 힘든 가파른 산에 엄청난 건축물을 지어 올린 통일신라의 권력, 그리고 종교의 힘. 계단뿐만 아니라 다보탑 역시 우러러봐야만 하는 높은 높이를 자랑한다.

높이와 권력 = 계단과 권력. 유홍준 교수님의 글처럼 곳곳의 아름다움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유현준 교수님의 설명하신 권력의 속성을 발견하기는 쉬웠다. 도슨트의 설명을 들었다면 또 다른 감동이 있었겠지만 비 내리는 날 불국사의 모습도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그렇게 단청을 보고, 한 걸음에 오르기 당황스러운 높은 계단을 걸었다.


보지 않은 자는 보지 않았기에 말할 수 없고, 본 자는 보았기에 말할 수 없다.

- 유홍준'나의 문화유산답사기2' 석불사 p.184 -

불국사의 단청

보지 않았기에 말할 수 없는 석불사와 보았지만 짧게만 말할 수 있는 불국사를 그렇게 다녀왔다.









https://www.gyeongju.go.kr/tour/page.do?mnu_uid=2695&con_uid=248&cm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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