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울던 조카가 한 말 중에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라는 말이 있었다. 들으면서 뜨끔했다.
조카는 어릴 때 마음을 잊어버린 엄마를 원망하기 위해 던진 말이었다. 개구리에게 던진 돌, 그 돌에 맞고 아파한 건, 그 얘기의 당사자인 나의 바로 밑 동생이 아닌, 이모인 나였다.
나도 조카처럼 첫째다. 3년도 되지 않아서 나의 자리를 양보했다. 늘 양보했다. 첫째는 그런 거라고 집에서, 집 밖에서 들었다. 뭔가 억울한 마음은 있었지만 나는 조카처럼 그렇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혼자서 그렇게 세상의 이치에 순응했다. 12살 아이의 말을 브런치에 옮겨 적었다. 아이의 말을 잊지 않기 위해서, 어쩌면 올챙이 마음을 잊은 개구리의 필사적 노력이었다.
나는 늘 그랬다. 적당한 반항도 없이 살다가 가끔은 울컥했고, 힘겨웠다. 하지만 내 마음의 불편함이 무엇인지도 모른 체 살아왔다. 나이가 들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그렇게 나는 나의 불편함을 세밀하게 들여다보지 않았으며, 그저 가벼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왔다.
월급을 위한 활동을 제외하고 칩거에 가까운 2년을 보내면서도 한 번에 깨닫지 못했다. 내성적이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나라는 사람. 외향적인 사람을 부러워하면서도 가끔은 내가 대견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다. 이런 내향성과 민감성으로 여기까지 버텨왔다는 사실이.
올해 나를 꽤 탐탁지 않아하는 선배에게 나의 비밀을 고백했다. 사실은 그렇게 술자리 초대를 거절했다. 다시는 초대하지 못하도록.
나의 비밀은 사실, 술은 싫어한다는 것이다. 24세까지 입에 대지 않던 알코올을, 25세 입사라는 장면 전환으로 마시게 되었다. 애주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10년을 넘게 노력해도 특히 소주는 너무 어려운 술이다. 알코올을 혐오한다는 것이 나의 비밀인 이유는 사람들에게 나는 술자리를 꽤 즐기는 직원으로 인식되어있기 때문이다. 술은 도구였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적응하기 위해서, 회식에는 술이 있었으니까.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으니까.
회식에 빠지지 않는 프로참석러였으니까 나의 이미지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오해를 굳이 풀려하지 않았다. 술을 마신다는 자체가 사회성 좋고, 외향적인 직장인 같았으니까. 진짜 나와 정반대의 모습이 갖고 싶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맥주는 그나마 더운 여름에는 시원함과 탄산으로 마실만했다. 하지만 소주는 어려웠다. 내가 술을 마시는 날은 모임에 참석하는 날과 일치했다. 그리고 술을 마시기 전에 급하게 빵집에서 크림빵을 사거나 편의점에서 술에 덜 취한다는 그런 알 수 없는 것들을 미리 먹었다. 크림빵은 누군가가 알려준 비법이었다. 정말 안 취하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배가 부르면 술이 덜 취한다고 했고, 진짜 그런 것 같았다.
술도 싫지만 워낙 빨리 취하는 나 스스로가 더 싫었다. 뭔가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할까... 사실은 술은 너무나 싫어한다고, 화장실에서 뱉고 있다는 숨겨진 사실은 선배를 놀라게 했다. 아마 연기를 잘하는 수준급 배우를 본 것 같은 배신감을 느꼈을까? 뭐라 생각해도 이보다 더 솔직할 수는 없었다.
승진을 한 것도 아니고, 부자가 된 것도 아니다. 그저 우선순위가 타인에서 나로 바뀌었음을 고백한 것이다. 술자리에 참석한 것도 못 마시는 술을 마시는 것도 내가 원한 날도 있었지만 대개는 사회생활의 이름으로 타인을 위한 것이었다. 우선순위를 타인에서 나로 바꾸니, 결론은 단순했다. 술자리를 함께 한다고 친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다고 인맥이 항공 마일리지처럼 쌓이는... 그런 일은 없다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나이와 체험으로 알게 되어서...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
전체주의에 오랜 시간 동참했던 충직한 신하 같았던 나의 입장 변화는 선배에게 꽤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무난한 사람이자 튀지 않는 사람에서 취향과 소신이 있는 개인주의자로 돌변했다. 개구리에서 원래 내 모습 올챙이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소신을 말한 순간부터 적으로 보는 사람이 더 많이 생겼지만 역설적이게도 자유롭게 되었다. 술자리에 초대받을 일도 없으며, 불편한 멘트와 시선을 볼 일도 사라졌으니까. 그리고 소소한 행복을 만드는 시간을 침해받는 일도 없었으니까.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작가님의 글처럼 "한국인들은 외로움에 못 견뎌, 나쁜 관계로 도피한다"라고 했던 문장을 벗어난 한국인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꽤 마음에 든다.
홍찐아~이모는 잊었던 올챙이 마음을 다시 찾기로 했어! 이제 그 불편한 마음을 홍찐이처럼 언어로 말할 수 있어. 개구리는 되었지만 싫은 건 정말 싫었어. 소주는 여전히 소독약 맛과 향이 나거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