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 '그림의 방'
p.33
루소는 사후에 피카소와 페르탕 레제, 막스 베크만 등 20세기 미술뿐 아니라 문학, 음악, 영화계에까지 영향을 끼친 최고의 예술 거장 반열에 올랐고,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라는 칭송을 받게 된다. 그림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개척한 루소.
그는 예술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 화가다.
'OO과정에 합격하셨습니다'라는 메일이 왔다.
결과에 기쁘기도 하고, 과정을 잘해낼지 걱정도 찾아왔다. 원서를 내면서도 과연 될까 하는 물음표와 혹시나 될지도 모른다는 느낌표가 마음 안에 뒤섞여 있었다. 부족한 스펙과 관련이 적은 전공이기에 프로젝트에 원서를 내는 것 자체가 무모하고도 엄청난 도전이었다.
이과 출신들만 지원할 게 뻔한데, 내가 될까?
내가 지원해야 할 이유가 1~2가지라면, 내가 지원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8~9가지였다. 깊은 생각은 언제나 내 발목을 잡았다. 냉동인간처럼 10년 이상 한 자리에서 나는 멈춰 있었다. 시간이 흘러 세상도 바뀌고, 내 주변도 바뀌었다. 과거의 시간에 머물렀던 내가 깨어나는 시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지방 발령과 코로나라는 암흑 터널이었다.
"가장 외로운 시간이 가장 생산적인 시간이다"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는 사람이라곤 회사 사람들과 학교 동창이 한 명 있었지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철저히 혼자가 된 시간이었다. 20살, 처음 서울에 올라왔던 기억을 잊고 있었는데, 새록새록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다른 게 있다면 나이, 그리고 월급이 있었다.
불안과 우울이 반년 정도 찾아왔다. 우연히 읽었던 양귀자의 '모순'을 읽고 마음의 틀, Frame을 바꾸게 되었다. 제목처럼 모순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처럼 생동감 있게 살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소설 속 진진의 이모가 남긴 유서에 적힌 문장이었다.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무덤 속 같은 평온 말고~'라고 했던 이모의 마지막 문장이 우울 속에 갇혔던 나를 움직이게 했다.
학부 시기에는 소설책을 읽었다. 회사에 들어온 순간부터는 자기 계발서와 처세술 책만 읽었다. 그렇게 열심히 읽었던 자기 계발서도 나를 일으켜 세우진 못했다. 읽는 순간, 진통제를 먹고 아픔을 잠시 잊은 사람처럼 기분이 조금 나아질 뿐이었다. 뿌리 깊은 병에 아주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 아픔의 뿌리를 치료해주었다.
혼자 있다 보니, 말이 하고 싶어졌다. 생각은 많아지고, 말할 공간과 사람은 적었다. 브런치를 시작했다. 수다를 글로 적었다. 말이 많은 사람답게 글감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다만 글로 전달하기에 나의 표현 능력이 부족한 것이 흠이었다.
맨 처음에 적은 글을 최근에 읽어본 적은 없다. 작년에 우연히 읽었다가... 초기에 적은 글은... 다시 읽어보니 부끄러웠다. 아마도 지금 적은 글도 시간이 지난 후에 그런 생각이 들겠지만. 마음은 멋지고 아름다운 글만 남기고 싶지만 현실은 들쭉날쭉한 글솜씨를 자랑한다. 아쉽지만 흑역사도 역사이기에 남겨두기로 했다.
글쓰기를 따로 배운 적은 없었다. 서툴지만 쓰다 보니 글의 내용이 조금씩 잡혀갔다. 그리고 3년 동안 나의 지대한 관심사, 코로나 바이러스는 좋은 글감이 되었다. 발표 내용 역시 코로나였다. 쓰다 보니 관심사를 알게 되었고, 새로운 기회를 만나게 되었다.
늘 궁금했다. 나에겐 왜 뜻밖의 행운이 찾아오지 않을까?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 좋은 일들이 산타클로스의 선물처럼 찾아올 때면 나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 오랜 시간 찾지 못한 답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 어떤 새로운 곳에도 도전해보지 않았고, 원서라는 적힌 문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 너무 많은 생각에 무거워진 마음과 머리는 행운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거기다 행운이 다가왔을 때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를 저울질하는 나쁜 습관도 버려야 함을 깨달았다. 얼마 전 읽었던 '커리어 패스'에 관련 글에서 'Imposter Syndrome' 체크 리스트에 실린 문장이 평소의 내 모습이었다. 늘 부족하다는 강박적인 마음이 그다음으로 달려가지 못하게 했다.
* 가면 증후군이란, 자신의 성공을 노력이 아닌 운의 탓으로 돌리고 자신의 실력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심리이다. 높은 성취를 이루었는데도 그것을 과대평가된 것으로 치부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과소평가한다. 이런 심리는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서 나타나곤 한다. 높은 기대를 받는 사람이 실패의 충격을 미리 완화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라는 전제 하에 미리 스스로를 믿지 않아 버리면 혹여 일이 잘못되더라도 후폭풍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 나무 위키 -
쓰다 보니 알게 된 것이 있었다. 내가 바라는 나와 너무나 다른 현실의 내가 가진 키 차이, 타인의 시선과 인정에 목말라했던 어른 아이의 모습, 도전에 망설이는 나와 결과에 실망하는 나, 가끔은 성취하는 내가 한데 모여서 없던 길을 만들어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