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무대의 제목은

정지우,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by 그럼에도

p.200

대개 나이가 들면서 이런 '여러 개의 자아 갖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삶은 유동적으로 흘러 다니며 자유롭게 갈아탈 수 있는 무엇이기보다는 점점 어느 하나로 고착되기 시작한다. 바깥과 안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 여기서나 저기서나 그저 딱딱한 하나의 존재로 수렴되어간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삶의 생기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대개 여러 곳에서 다양한 '자기'를 지닐 수 있는 사람들이다.


연극반의 새로운 학기가 시작됐다. 지난 학기에 끼와 재능이 넘쳤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그중에서 조용한 편(?)에 속했던 나 포함 3명만 재등록했다.


연극반은 처음 만난 날, 둘러앉아서 자기소개를 하고, 즉흥 연기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즉흥 연기 미션을 보면 그 사람의 끼와 재능이 한눈에 들어온다. 난 이번에도 끼와 재능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나 나는 정해진 대본을 읽을 때가 좋다. 즉흥적인 것은 일도, 연극도 어렵다는 공통점.


연극반의 자기소개는 1~2분이지만 짧고 강렬하다. 나이와 직업을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가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하는 자기소개와는 내용도 형식도 다르다.


'왜 내가 여기에 왔는가?'라는 질문을 아무도 던진 적은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도, 다른 사람들도 왜 연극 수업을 듣는지를 설명한다. 그중 한 명의 자기소개가 인상적이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분의 자기소개는 이랬다. '결혼하고, 직장 다니며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가 사라졌어요. 나를 찾으려고 연극반에 왔어요'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자기소개를 하려고 하면 나는 언제나 그렇듯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 그분 다음 차례가 나였다. 나도 모르게 그 분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뇌를 거치지 않고, 마음의 소리가 그냥 입 밖으로 나왔다.


"요새 문득 든 생각이 있어요. 저는 코로나를 기점으로 살아온 인생의 정반대로 살고 있어요. 주변에선 너는 연극은 못할 거라고 했어요. 끼와 재능이 없다고. 남들은 안된다고 해도, 나는 된다고 믿고 왔는데... 그런 나도 대사 중에 더 소리를 높일 수 있는 장면에서 나를 말리고 있더라고요. 나도 나를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이번 학기에는 정말 나를 내려놓고 싶어요."


말을 하고도 당황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이런 말이 내 입에서 나오다니,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첫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갑자기 내 앞에서 자기소개를 했던 수강생이 떠올랐다. 외모로 보아 나이는 비슷해 보였지만 나는 미혼이고, 그분은 기혼이다. 분명 정반대 되는 상황인데, '나를 찾겠다'는 마음은 비슷한 나이에 시작되었다는 게 신기했다. 인생의 전혀 다른 노선을 밟고 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난 남편이나 아이를 위해 희생한 적도 없는데, 나를 찾는 노력이 왜 이렇게 늦었을까?


난 내 나이에서 숫자 10을 뺀 만큼, 아니 더 미성숙한 어른이다. 나이는 어른인데, 사회화는 덜 된, 성숙함을 가지지 못한 어쩌다 어른.


연극반 수강생 대부분은 20대의 여자다. 난 20대 수강생들을 아주 부러워한다. 내가 만약 그들처럼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면 나의 30대는 얼마나 풍성한 즐거움이 있었을까? 지금 나이에 나로 살지 않을 텐데. 나는 한없이 그들을 보면 부럽다. 개인적인 대화 한 마디도 해본 적이 없고, 해볼 일도 거의 없을 텐데. 눈빛으로 부러움을 말한다. 화장 안 한 맨얼굴인데 빛이 난다. 나의 어두운 20대가 떠오르면서 겹쳐진다. 흑백의 대비.


연극반 수강생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수업 외에 개인적인 대화를 전혀 하지 않고 수업 후에는 바람같이 사라진다. 익명성이 보장된 무대라고 할까? 가끔은 매정하다 싶지만 한편으로는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대사에 몰입하게 된다. 덜 부끄럽다. 아마 내가 아는 사람 앞에서 대본을 읽어야 했다면... 나는 AI처럼, 책을 읽듯 대사를 말했을 것이다. 부끄럽고, 떨리고, 자신 없는 평소의 모습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에 태어나고 회사와 피아노 학원을 제외하면 완벽한 2년간 칩거의 시간이었다. 올해가 외부 활동의 첫 시작이었다. 물론 그나마도 마스크를 철저히 낀 배움 활동이지만.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이 도시에서 더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텐데, 나의 가능성을 더 빨리 찾았을 텐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다.


요새 나는 많은 후회를 한다. 숨 쉬는 시간만큼을. 예전에 놓쳐버린 인연과 기회. 주변에 소시오패스 무리들.


나는 왜 이렇게 살게 되었을까? 난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몇 년 전부터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나는 내가 마흔 살까지 살아있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엄마 아빠와 같은 존재였던 외삼촌이 차사고로 서른아홉에 갑자기 떠나셨다. 충분히 애도하지도 못했으면서, 10년, 20년의 시간을 믿지 않았다. 언제든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그런 막연한 불안과 공포가 태생적인 소심함과 결합했다.


그때는 몰랐고, 이제야 알게 된 나의 히든 스토리. 거기다 이번 생은 망한 것 같다고 느껴질 만큼 주변엔 금수저, 은수저들이 많았다. 정반대의 나는 초라했다. 백화점 쇼핑을 한참 많이 하던 그때 그 시절은 초라한 마음을 감추기 위한 메이크업이었다. 독버섯이 자라기 좋은 장마철 기후처럼. 나의 어둠에 괜찮은 사람마저도 주변에 없었다. 여러 모로 인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요새 나는 예전에 가까웠던 사람들과도 잘 만나지 않는다. 그런데 신기한 건 회사 밖에서 취미로, 공부로, 이런저런 공간에서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의 본캐 외에도 입체적인 이력과 생각을 갖고 있다. 다양한 부캐를 가진 사람들만 일부로 고른 것처럼. 마치 짜인 각본처럼.


사람 일은 정말 모를 일이다.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낯선 도시에서 우울증에 걸렸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내가 제일 못하고, 싫어한다고 알고 있었던 것을 하나하나 도전해보고 있다. '싫어하고 못한다'는 것이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낯설다, 익숙하지 않다, 이런 세상이 있는 줄 몰랐다'로 세분화될 수 있었다.


처음 본 미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그림을 잘 그리려면 실패를 많이 하세요. 그러면 돼요

라는 말씀과 함께 첫날은 혼자 그리라고 하시면서 그리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으셨다. 다음 수업부터 수업을 하겠다는 말씀과 함께.


나는 실패해보지 않아서 잘하는 게 없다는 내 인생의 비밀을 수업을 통해서 배우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그 사람이 묻어 나온다고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그건 아직 알 수 없지만 공책에 색연필로 낙서 겸 작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 소소함, 대강, 그냥 그런 사람이 아닐까?

내 인생의 2막은 코로나를 기점으로 시작됐다. 지금의 불행과 불안은 이번엔 내 편이 될 거 같다. 그게 이번 무대의 소재이며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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