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위로

by 그럼에도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고 나서, 오히려 피아노 연습 시간이 늘었다. 학원을 다닐 때는 연습이 귀찮기도 하고, 레슨 시간에는 그날의 고민거리가 갑자기 떠올라서 집중이 되지 않는 날도 많았다. 그런데 어제, 오늘은 늘 틀리던 부분에서도 신기하게 스르륵~넘어갔다.


어제, 오늘은 신기할 만큼 피아노에 집중했다. 마치, 피아노를 처음 샀을 때쯤의 열정처럼 불타올랐다. 이런 청개구리 같은 심리는 뭘까? 이젠 숙제 검사를 하는 선생님도 없는데...


요 며칠 내 안에서 집 문제로 고민, 집주인에 대한 미움이 있었고, 밖으로는 일주일 동안 10.29 기사와 영상에 온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었다. 주변에 다녀온 사람은 없지만 남일 같지 않아서, 거기다 나는 재난이라는 상황에 특히 민감하다. 타고난 DNA에 위험이라는 요소는 멀리 있어도 초민감하게 바라본다.


그렇게 뉴스에 집중하다 보니 책임을 피하는 사람의 특정한 언어 패턴이 보였다. 분명 나이도 위치도 다른데 방법은 비슷했다. 논점 흐리기, 전문 용어(법)를 사용하거나 애매모호한 문장 말하기, 논리보다는 감정에 집중하기가 보였다. 이건 회사에서도 보던 OO님의 언어들인데,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 역시 똑같은 패턴으로 문장을 말했다.


요새 나의 에너지와 감정은 우울하고 불안, 분노 모드이다. 그래서인지 요새 브런치에 쓸 글감이 많아졌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날들은 기분이 좋은 날보다 우울한 기운이 가득 찰 때이다.


정말 기분이 좋은 날은 폰 사진첩에 사진이 늘었고, 기분이 우울한 날은 브런치에 글이 늘었다. 이것이 나의 일정한 삶의 패턴이었다.


결국 나는 쓰고 있었다. 감정이 쌓이거나 분노 레벨이 오를 때는 쓰기 시작했다. 나의 감정을 눈치채려고, 늦게나마 스스로를 보듬으려 하고 있다.


예전에 같이 근무하던 OO님이 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내가 집 문제로 동분서주하고 난 다음이었다. 갑자기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바닷속의 모래알처럼 작게 느껴졌다. 난 그저 돈이(물론 나에게는 큰돈이지만) 사라지는 것이지만 어떤 분은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갑자기 내 문제를 먼 거리에서 따로 보게 되었다. 이 집으로 한 달간 골머리를 썩고 있었는데 반대로 남은 근 일 년의 시간 동안 이 집을 '힐링캠프'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과는 너무나 먼 곳이니까, 가끔 머리를 비울 때 이곳을 캠핑처럼 찾아와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캠핑 비치고는 비싸지만 빈 집을 월세 주면서 날리는 것보다는 마음의 힐링캠프로 삼겠다는 생각을 하니... 생각만으로도 마음에 공기가 돌았다.


글을 쓴다는 것, 이틀 동안 특별한 일정 없이 빈둥거리는 시간, 글 쓰는 시간이 모여서 나를 위로해주고 대안을 찾아주고 있었다. 세상 물정에 어리숙한 내가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려나 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최선을 다해 나를 돌보고 있어. 나마저 나에게 등을 돌리지 않아.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끝까지 내 곁에 있어주지. 어떤 감정이 찾아와도 다 괜찮아.

- P.197 김애리, '어른의 일기'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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