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바로 앞에 대형 마트가 있지만, 재래시장에서 채소를 살 때 소소하고 대체 불가능한 행복을 느낄 수 있어서 가끔 일부로 시장으로 향한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20분을 가야 하는데, 한때 내 사무실이 있었던 건물 근처에서 버스가 정체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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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앞에는 미나리와 달래, 깐 마늘, 상추, 시금치가 있었다. 채소별로 한 바가지씩 사고 별 이유 없이 미나리는 좀 더 많이 샀다.
- p.278, '국선변호인이 만난 사람들' -
내가 쓴 글 중에 자주 읽히는 글 1위는 '마음이 차가워질 땐 따뜻한 된장국을'이라는 글이다. 이 글은 한 번도 브런치나 다음 메인에 걸린 적 없음에도 가장 꾸준하게 읽히는 글이다.
타지 생활 중에 마음이 울적해졌을 때, 재래시장에 들러서 산 채소로 저녁밥상을 차리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내용의 글이었다. 이 글의 모티브는 몬스테라 작가님의 글이었다. 책이 출간되기 전, 브런치에 재래시장에서 장 보는 일화를 올리신 적이 있었다. 그 글을 읽고 얼마 후, 나도 시장에 가서 장을 보았다. 그리고 그날의 일상을 글로 올렸다.
19살까지 지방에서, 사람들이 시골이라고 부르는 곳에 살았다. 시장을 가본 경험은 어려서부터 많았지만 서울에 온 다음부터는 이용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흔적을 지워내 듯, 가장 서울스럽고, 가장 도시스러운 장소만을 방문했다. 마트도 집 앞보다는 대형 할인마트를 다녔다. 그런 생활이 진정한 도시인 같기도 했고, 편리하기도 했다.
시장이라는 공간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근처를 지나갈 일은 있었지만 그저 운전 중에 스쳐 지났을 뿐, 내 발이 머무는 장소가 아니었다.
몬스테라 작가님 글을 읽다가 떠올렸다. 8살, 외할머니 손을 잡고 갔던 시장을, 외할머니는 손녀인 내 손을 잡고 따뜻한 호빵 하나와 베지밀 B를 사주셨다. 나에게 시장에 간다는 것은 호빵과 두유를 먹는다는 것이었다.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오랜 서랍이 열린 기분이었다. 글을 읽고 며칠이 지나서 시장에 들렀고, 한 달에 몇 번은 꼭 시장에 가는 일상이 생겼다. 시장에서는 제철 야채와 생선을 산다.
시장에 가보면 마트와는 다른 풍경이 보여진다. 지금 나오는 제철 과일과 야채, 생선이 가장 좋은 자리에 올라와 있다. 경상도에서는 곰취와 비슷한 '달개비'라는 잎이 있다는 사실도, 시장 떡집에서는 처음 본 '주걱떡'이라는 으깬 찹쌀에 통팥을 둥글린 떡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달개비도 주걱떡도 내 입맛에 딱이라는 사실까지도 배웠다.
분명 나비의 날갯짓이 세상을 바꾼 일이었다. 우연히 몬스테라 작가님 글에서 인상적이었던 글을 읽었을 뿐인데, 잊었던 기억도, 가보지 않았던 시장을 간 것도, 새로운 경험까지 할 수 있었다.
글이 타인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어떤 글은 스쳐가고, 어떤 글은 오래 마음에 남아서 생각을 맴돌다가 행동을 바꿨다. 글은 누군가에게 생각의 씨앗을 전해줬다. 더 많이 읽고, 행동한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생각의 실마리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연한 작은 행동이 많은 것을 다르게 바꿀 수도 있는 일이었다.
P.S :법률이라는 차가운 단어에서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신 몬스테라작가님께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