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인테리어 상담은 옷차림?

by 그럼에도

좌충우돌 휴가를 끝내는 밤, 잠이 오지 않는다.


내일부터 다가올 일들이 걱정되서일까? 3월의 다가온 봄이 부담스러운 걸까?


휴가의 첫날은 인테리어 투어를 했다. 내가 사는 집 인테리어를 끝낸 후, 부모님 집 인테리어 상담도 내가 알아보기로 했다. 추천받았던 한 업체는 상담이 좀 달랐다. 집에 와서 실측 후에만 상담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휴가를 냈다. 실측을 하러 온다고 했던 날 아침에 전화를 했다. 시간을 앞당기려고 전화를 했는데, 당황스러운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실측이 있다고요? 저랑 진짜 통화한 거 맞으세요? 제가 운전 중이라 조금 있다 전화드릴게요."


3주 전에도 지금의 인테리어 실장님은 운전 중이었다. 운전 중이었지만 오분 가량의 통화를 했고, 실측 날짜와 시간까지 예약했었다.


잠시 후 전화가 왔다. "저랑 직접 통화한 거 맞으세요? 작년 11월에 문자, 2월 초에 전화를 한 건 맞지만 오늘 예약은 없었는데요."라며 본인은 깜빡한 게 아니라며 책임을 돌렸다. 황당했지만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런가요? 그럼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전화를 끊었다.


실측 때문에 휴가를 낸 입장에서 황당했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큰 공사 비용을 처음 본 실장님을 보고 계약한다는 건, 고객에게 굉장히 어려운 선택이다. 오늘 일은 나의 많은 선택지 중에 하나를 자동 삭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휴가를 낸 김에 시내 두 군데 업체와 추가로 상담 일정이 있었다. 두 군데 모두 실내 인테리어 건축 면허를 보유한, 업계의 대기업 같은 곳이었다. 첫 번째 일정이 취소되면서 자연스럽게 두 군데 상담이 앞당겨졌다.


바로 방문한 곳의 여자 실장님은 친절하고 세심하셨다. 한 시간의 대화 후 간략한 견적서를 보여주셨다. 너무나 아름다운 홈페이지 인테리어 사진과는 달리, 나의 예산에는 욕실 기본형을 추천했는데... 친절한 상담과는 달리, 금액이 이상했다. 거기다 싱크대는 '사제'라고 하는 이름 없는 브랜드가 정말 괜찮다며 은근한 강요를 했다. 처음엔 나의 예산을 아껴 주기 위한 것인 줄 알았다. 견적서를 보기 전까지.


공사는 최근에 경험했기에 대략적인 금액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이건 좀 이상했다. 욕실 공사 비용과 방수 공사 비용은 각각 따로라고 말했다. 작은 공간에 이렇게 비용이 많이 든다고? 보통은 욕실 공사라는 이름에 포함시키는 비용인데, 기본형이라는 이름과 달리 금액은 럭셔리했다. 24평 집에 스위치 교체 비용만 25만 원(전기공사 220만 원 제외하고)이라는 알 수 없는 금액까지... 달콤한 상담과 이해할 수 없는 견적으로 첫 상담을 마쳤다.


두 번째 업체는 맥도널드나 관공서 건축까지 하는 가장 큰 규모의 업체였다. 업체 소유의 건물에서 받은 상담은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기존에 OO 타일을 써보니, 이렇다'는 말을 하자, 무안할 정도로 노려보았다. 무안한 십 분의 시간이 흐른 후 알게 되었다. 이미 3월까지 일정이 다 찼고, 4월은 비어 있지만 시외까지 가기엔 좀 귀찮고.. 공사 금액이 넉넉하지 않으니, 설비 공사(방수나 보이지 않는 부분)는 빼고, 보이는 부분만 공사를 진행하자고 했다. 그마저도 내가 원하는 사양보다 한 단계 낮은 브랜드를 권유했다.


그렇게 보이는 곳만 공사할 거라면 왜 이런 대형 업체까지 와서 상담을 할까? 상담받은 내용이라면 셀프 인테리어로 '인테리어 플랫폼'에서 저렴하게 이용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었다. 나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와 믿을 수 있는 시공을 위해서 대형 업체를 찾았는데 20분도 안돼서 일어나야 했다. 여기는 견적서도 주지 않았다. 며칠 후 문자로 주겠다고 했지만 아마도... 작은 아파트 공사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업체 대표가 수첩에 적은 내용을 허락받고 사진을 찍은 것으로 공사 규모를 확인했다.


집에 돌아와서 사진을 확대해 보고 빵 터졌다. 그렇게 설비 공사를 생략하라던 업체는 도배 가격에서만 다른 업체들보다 100만 원 이상 비쌌다. 화이트 실크 벽지라는 동일한 조건에서... 첫 번째 업체도 다른 곳보다 더 큰 금액을 불렀는데, 두 번째 업체는 거기에 100만 원을 더 붙인 가격이었다. 물론 욕실 가격은 첫 번째 업체보다 많이 저렴했다. 비결은 가장 싼 기본 작은 타일로 대강하는 금액이었고, 거래하는 특정 업체 브랜드 기준이었다.


여하튼 나의 연차 휴가를 바친 인테리어 상담은 오후 5시가 다돼서 종료되었다. 인터넷에 적혔던 후기는 정말 고객이 쓴 건 맞을까? 직원이 많은 대형 업체라고는 하지만 나 역시 플랫폼 가격이 아닌 인테리어 한 곳에 모두 진행하는 '턴키' 방식으로 가장 큰 금액 기준으로 상담을 했건만 두 업체 모두 실망스러웠다.


홈페이지와 사람들의 리뷰 내용과 실제는 달랐다. 물론 공사를 진행해 봐야 진짜 모습을 알 수 있었겠지만... 계약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렇게 대형 업체 상담 후 아빠 가게 옆의 아는 아저씨 집에서 상담을 받았다. 워낙 박리다매로 운영하시는 건 알았지만 두 업체보다 훨씬 더 많은 요구 조건과 브랜드 사용(단열재 추가)에도 천만 원이 더 저렴했다. 물론 지역 작은 업체이다 보니, 위에 업체 같은 자격증은 없었지만 지역에서 성실하게 일하신 분으로 평판이 좋은 분이셨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원하는 사양을 들어주시고, 거래하는 업체가 아님에도 알아보려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사실 세 군데 모두 나는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에 편안한 맨얼굴로 상담을 받았다.


백화점에 갈 때는 평소보다 더 꾸미고 가야 대접을 잘 받는다는 건 너무나 상식적인 일이다. 인테리어 업체도 마찬가지다. 사실 큰 공사 비용을 낼 수 있는 재력(?)이 느껴져야 하니까.


알면서도 편하게 입고 갔다. 휴가니까. 그리고 그렇게 편하게 갔을 때 반응도 궁금했다. 같은 집 상담인데 작년, 모 대기업 프랜차이즈에서는 편한 옷차림의 나에게 대강 상담하면서... 요새 쓰지도 않는 자재와 가장 기본 모델로 고가의 금액을 말했었다. 한 마디로 세상 물정 모르는 호구 취급이었다. 자재도, 시세도 모를 거라는 실장의 짐작은 맞았지만 실장의 눈빛에서 알았다. 뭔가 싸한 느낌이 흘렀다.


이번 상담을 받아보니, 아빠 가게 옆 사장님을 제외하고, 두 업체도 작년과 비슷했다. 편안하지만 허름한 옷은 아닌데도 그들의 시선에서는 재력이 부족하거나 세상 물정에 어두워 보였던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에게 편안한 복장이 주는 가치가 있었다.


그건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진짜 속마음이 비춰진다는 것이다. 3주간의 공사와 공사비용 결제 후에도 AS로 연락할 일이 있을 텐데.


귀찮은 AS에는 상담받을 때처럼 달콤하지 않다는 건 세상의 이치 아닌가. 그렇게 그들의 속마음의 일부가 잘 드러나서 편안한 옷차림의 상담을 선호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작년 업체는 아빠 일을 도와주다가 상담 시간이 다돼서 급하게 달려간 의상이었다. 그런데 그 편한 복장으로 그런 대우를 받고 난 후, 난 오히려 인테리어 상담은 편한 옷으로 가야 한다는 엉뚱한 지론이 생겼다.


여하튼 상담받으러 갔다가 엉뚱한 지론만 하나 늘었다. 이러다 공사 할 수 있을까? 이러다 내가 인테리어 업체를 차리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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