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느림보

고비 또 고비

by 그럼에도

너무나 오랜만에 연극을 봤다. 이번 주는 하루만 제외하고 모든 것이 오래전부터 예정되었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은 지방 워크숍에 참가했고, 돌아오는 길에 요리수업까지 다녀왔다. 그렇게 나의 체력을 과신했다.


문제는 목요일 저녁 5시 50분에 시작됐다. 아빠의 전화였다. 다급한 목소리로 우리 집 아래층에 엄청난 누수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4월 말에 리모델링과 싱크대 교체를 했었기에, 이유는 예측 가능했다.


목요일 저녁은 퇴근과 함께 오랜만에 모임에 참석하는 날이었다.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었다. 우울함과 충격을 뒤로하고, 인테리어 업체, 싱크대를 결제했던 대리점주, 싱크대 본사, 검색으로 급하게 알아낸 누수탐지업체에 상황을 신고하고 다음날 아침 10시에 모두 만나기로 했다.


나는 작년 11월에 누수 현장의 피해자였었는데 반년만에 가해자가 된 셈이었다. 아무리 인생은 돌고 돈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했다. 운명이 나를 너무 강하게 훈련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날 휴가를 내고, 부모님 집에 내려왔다. 10시 전에 모든 담당자가 이미 도착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추가로 아파트 관리실 직원분을 대동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원인을 정확히 파악한 후 해결하고 싶었다.


10시 20분에 원인을 찾았다. 싱크대 수전헤드 부품 부족으로 역류했고, 아래층 천장이 내려앉는 주요 원인이었다는 결론, 미세하지만 온수관에 미세한 고무바킹이 풀린 자국까지 찾아냈다. 가장 큰 원인은 싱크대였다. 현장을 촬영하고, 답답한 본사와도 몇 번이나 통화를 했다. 오후 두 시에는 문제의 싱크대를 철거해 버렸다.


누수 전화를 받고 정확히 20시간 이내에 원인 물질을 찾고 제거했다. 하지만 복구는 최소 두 달 이상이 걸린다는 진단을 받았다.

30층 계단을 걸어보니, 제일 힘든 고비는 언제나 8층이었다. 지금내 인생도 8층을 지나는 중이다.

아래층은 최소 두 달간은 내려앉은 천장을 바라봐야 했다. 아랫집의 천장이자 우리 집의 주방 바닥도 한 달 이상 물기를 말려야 했다. 싱크대 수전의 정말 작은 부속이 없었을 뿐이었다. 가게 일로 아침을 거르는 경우가 많은 부모님은 주로 저녁에만 물을 썼다. 거기다 보름 중 오일은 집이 비어있었음에도 아래층에 폭포 같은 누수가 생겼다. 만약 일반적인 가정이었다면 일주일 이내에 사건은 발생했을 것이다.



리모델링은 내가 몇 달간 권유해서 내린 결정이고 실행이었다. 싱크대 역시 내가 직접 고르고 대리점에서 주문, 본사가 시공한 제품이었다. 리모델링에 만족한 지 보름이 넘었을 무렵 대형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작년 겨울부터 준비한 '나의 두 번째 리모델링'이었다.


리모델링은 디자인과 색, 브랜드까지 하나하나 고른 내 작품이었다. 시공만 업체가 했을 뿐, 내가 설계했는데, 누수로 싱크대 제거와 함께 바닥공사까지 새로 해야 했다. 아래층은 한 달간 공사 소음을 잘 참아주었는데, 이번엔 누수로 두 달을 고생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까? 뉴스에서나 볼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싱크대 본사는 온수관의 미세한 고무바킹으로 원인을 몰아갔다. 현장에 방문한 AS 직원과는 정반대의 말을 이어갔고, 반복했다. 싱크대를 설치한 직원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가에 어색한 미소를 띠고 방문했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이십 분 만에 싱크대를 해체했다.


과연 본인의 행동을 본사에 솔직하게 보고할 수 있을까? 판매한 점주 또한 그날 설치 상황을 점검하러 왔었기에 책임이 있음에도 이건 본사가 모두 책임질 거라는 말만 반복했다. 다들 책임이 없다는 걸까?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었다. 아래층보다 더 놀란 아빠는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중간에서 나는 '별 거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호기롭게 다녔다. 하지만 모두가 자리를 떠난 후, '싱크대를 제거'한 거실에서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아 있었다.


난 뭘까? 월요일부터 목요일밤까지 제대로 자지 못했다. 고농도의 카페인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누수'라는 사건으로 쓰러질 지경이었다. 월요일에 싱크대 본사에서 연락을 준다고 했다. 그런데 담당자 태도로 보아서는 예감이 좋지 않다.


혹시 '일상생활배상' 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 먼저 해결하라고 했다. 당황한 나는 보험사에 전화했고, 딱 '의료비'만 가득한 보험을 확인했다. 과거에 왜 내가 실비보험을 해지했을까 하며 늦은 후회를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르고 본사와 몇 번의 통화를 한 후 깨달았다. 그들은 본인의 과실인 것을 알면서도 나의 보험으로 적당히 넘어가려 했다는 것을. 어떤 책임에서도 벗어나려는 그들의 노련한 언어에 내가 끌려다녔다는 것을.

명동예술극장, ‘벚꽃동산’


나는 오늘 본 연극의 주인공과는 달라야 한다. 연극 '벚꽃동산'에서는 지주 라네프스카야는 재정 위기로 벚꽃 동산을 경매에 넘어가는 상황에 서 있었다. 선택의 순간에서 우왕좌왕 방황만 하다가 시간을 날리고, 모든 걸 잃어버리는 이야기였다. 현실을 즉시 하지 못하고, 과거의 기억만을 떠도는 주인공, 라네프스카야.


배우들의 명연기로 고구마처럼 답답한 스토리가 생동감을 가질 수 있었다. 작년 연극수업을 다녔을 때, '벚꽃동산'의 대본 일부를 보았고, 대본리딩을 해본 적이 있었다. 너무나 길고 감정 변화가 격렬해서, 몇 줄을 읽기도 버거웠던 대사였다.


그런 길고도 험난한 대사를 주인공은 자연스럽고, 담백하게 읽어 내렸다.


고구마보다 더 꽉 막힌 내 일상, 고구마 같은 스토리의 연극이 오버랩되었다. 나는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보낼 수 없다. 나의 행동에 우리 집과 아래층의 누수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나 평온하고 심심했던 삼십 대였다. 사십 대 초반에 들어가면서 그동안의 밀린 과제가 한 번에 쏟아진 것처럼 왜 이렇게 사건이 터져 나올까? 한 고비가 넘으면 다음 고비가 기다렸다. 점쟁이가 말하는 '삼재'라는 것이 시작된 게 아닐까?


연극을 보고 집에 오는 길, 그런 생각이 났다. 나는 현실을 벗어난 '자연인'처럼 살고 있었다는 것을. 작은 공간이지만 내 집에서 살고 있었고, 회사와 반려견과 친구 외에는 딱히 고민이 없는 자연 상태로 살았다는 것을. 재테크에도 문외한이고, 남들처럼 결혼을 하지도 않았기에 현실 밖에서 신선처럼 살고 있었기에 아무런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최근 몇 년간 지방근무, 임대차계약 두 번, 집주인과의 마찰, 리모델링, 다양한 취미 찾기, 누수 사건까지 짧은 기간에 집약적인 경험을 몰아서 하고 있다. 한 게 많아서, 인생 경력이 풍부한 사회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기에, 울면서, 화내면서, 스스로 자책하면서 모든 상황에 길을 찾고 있었다. 이번에도 나는 길을 찾아갈 것이다.


아래층에는 가장 먼저 사과했고, 거실 벽과 바닥, 천장 석고보드까지 바꿔주겠다는 통 큰 약속을 했다. 사과도 빨랐고, 규모도 컸다. 사실 바닥 교체 요구는 무리했다. 오래 사용해서 바닥색이 달라졌음에도 어제 누수로 휘었다는 말을 들었다. 어이없었지만 두 달간 고생할 아래층에게 바닥 전체를 교체해 주기로 약속했다.


나는 이번 사건으로 어떤 사람이 될까? 지금 내가 정신과에 방문한다면 ADHD와 분노 조절 장애, 우울증 진단까지 무섭게 진단할 것 같다. 지금도 마음에는 무거운 돌이 앉아있다. 나는 어떻게 가시덤불을 맨 손으로 헤쳐나갈 것인가?


유일하게 나를 칭찬할만한 것이 있다면 작년 나의 누수사건 때 부르지 않았던 '누수탐지업체'를 불렀다는 것이다. 인생에 슬픈 경력도 이렇게 약으로 쓰일 때가 있었다. 언젠가는 나도 현명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부디 이 상처가 아물고 새로운 살이 자라나길, 상처가 덧나지 않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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