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을 기차에 두고 내리는 사건이 있었다. 새로 폰을 개통하고 보니, 연락처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평소 연락처를 저장하지 않은 나를 탓했다.
그러다 아주 오래전에 '네이버 주소록' 앱을 사용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업데이트라는 기능을 한 번도 눌러보지 않았음이 곧 드러났다. 최근 6~7년 간의 연락처는 없고, 십 년 이상 연락하지 않는 오래된 사람들의 연락처만 주소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래전 과거 인맥의 전화번호를 다운로드하고 보니, 카톡 프로필에 새로운 친구가 여러 명이 떴다. 그중 한 명은 전화번호를 삭제했던, 잊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회계 자격증을 학부 때 취득했고, 연예인 미모에, 눈웃음이 특히나 예뻤던 A였다. 취직, 연애, 재테크까지 원하는 건 모두 손에 넣는 '자기 계발서에 나올 법한 사람'이었다. 그런 A가 결혼하고 몇 달이 지나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각각 다른 남자를 만나서 연애를 했고, 그중 조건이 더 좋은 사람과 결혼을 했다는 것이었다. 연애 스토리를 묻지도 않았는데, 맨 정신에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좀 놀라기도 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나눌 만큼 깊은 우정(?)으로 착각한 내가 있었다.
그런 깊은 우정(?)의 본색은 '은행 실적을 위한 상품 강매'가 목적이었다. 몇 년을 좋게 말해도 듣지 않으니, 본인의 약점 같은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결국은 목표를 이루었던 A. 얼마 후, 대출이 필요해서 연락했더니 잠수 탄 것처럼 연락이 되지 않던 A에게 '상품'을 없애겠다고 하니, 바로 메시지가 날아왔다.
며칠 후, 나는 A의 전화번호를 삭제했다. 생각해 보니, A는 모든 행동이 한결같았다. 인맥이 대단했던 A의 결혼식은 금요일 저녁 6시였다. 나중에 이유를 물어보니, 인맥이 많은 만큼 많이 참석할 텐데... 금요일 저녁에 식을 진행하면 시간 맞추기 어려워서 다들 대봉을 하지 않겠냐며 깔깔 웃었다.
역시 남달랐다. 나 역시 A의 계좌로 당시 십만 원을 전송했었다. A는 인맥의 여왕답게 많은 축의금을 받았고, 금요일 예식으로 식비와 예식장 비용까지 아꼈다고 말했다.

카톡 프로필에 A는 아이들을 안고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언제나 남들보다 몇 배는 앞서서 달려가던 A는 여전히 인생의 지름길로 달려가고 있을까?
A의 프로필에 차단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그런데... A와 나는 정반대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지름길과 꽃길만 골라 걷는 A와 비포장길로 돌아 돌아서 걷는 내가 한 장면에 보이는 건 왜일까?
카톡 프로필에서 A의 눈웃음은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그때 나는 A의 매력에 빠져있었다. 실체를 알았을 때는 신기루처럼 사라진 존재였지만.
폰을 잃어버렸을 때, 머리가 하예지는 기분이었다. 이제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팀원들 번호는 카톡방으로 다시 받을 수 있었고, 웬만한 연락은 톡으로 대신할 수 있었다.
결국 그동안 엄청나게 저장되었던 전화번호는 의도치 않게 미니멀해졌다. 원래 이렇게 가볍고도 가벼운 인맥이었음을 실감했다고 할까. 물론 몇몇 분의 연락처는 몰라서 문제가 되었지만^^;;
가벼운 연락처와 너무나 가벼운 나의 일상, 산뜻한 샐러드드레싱처럼 상큼해질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