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지각인데, 가지 말까?’
요새 우리 집, 엄마집 모두 리모델링 후 수맥이 발견되고, 터진 후 처리 과정으로 심란한 상태에서 모든 게 귀찮고, 의욕 상실의 순간을 살고 있다.
거기다 오늘 할 일을 시간 안에 다 끝내지 못한 상황이었다. 일을 마치고 보니, 요리 수업에 30분 지각 예정…
그래도 사찰음식 과정의 마지막 날인데 유종의 미를 거두자는 마음으로 퇴근길에 나섰다.
30분 지각 ㅠㅠ 수업 전, 미리 요리법이 적힌 설명서를 받고, 스님이 요리 시연을 진행하는 수업이다. 그 후 시간은 수강생이 각각의 조에서 세 가지 요리를 만든 후, 시식하고 남은 음식을 포장해 가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도착했을 때는 세 번째 요리를 시연 중이셨다. 시연이 끝나고 조에 참석하니 수강생 세 명의 눈빛이 싸늘했다.

뭐지??? 수업에 늦어서 시연을 못 보면 나만 손해일 뿐, 같은 조원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 시연 후에 실습이었고, 조리법도 비교적 간단한 수업이었으니까.
네 번의 수업 중, 첫 번째 수업만 전원 참석했고, 이후 두 번은 한 명씩 빠졌다. 다른 조보다 적은 인원이라 수업 따라가기 바빴다. 요리 중에 일체의 개인적인 대화는 없었고, 각자 하나씩 요리를 맡아서 진행 후 인사도 없이 헤어졌다.
그런 각각의 네 명이 모두 참석했는데, 이 분위기는 뭘까? 오늘은 나를 제외한 세 명이 각각의 요리를 맡아서 말없이 진행하기 시작했다.
손이 놀고 있던 나는 아보카도를 다듬고, 청포묵을 기름에 부치며 재료 손질을 도왔다. 다하고 보니, 할 일이 없었다.
세 명이서 빠듯한 일이, 네 명이 되니 할 일이 적었다. 한 분이 장떡을 부쳐야 하는데 동그란 모양 잡는 걸 어려워했다. 옆에 있던 나는 “ 도와드릴까요?”라며 말을 걸었다.
나직하지만 신경질 섞인 목소리가 바로 들렸다.
“할 일 없으면 설거지나 해요!”
설거지도 필요한 과정이었지만 요리가 이제 막 시작이라 그런지 씻을 거라고는 도마 한 개와 칼, 접시 두 개가 전부였다.
어이없지만 진짜 할 일이 없어서 설거지를 시작했다. 모두 바쁜데 혼자만 우두커니 서 있는 게 민망해서였다. 그다음에도 그중 한 명에게 말을 걸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불쾌했지만 기분이 꽤 나쁘진 않았다. 오늘은 마지막 수업이고 그들을 다시 마주칠 일은 없으니깐.
정장 바지와 재킷을 입고 설거지를 하는 나와는 반대로 반팔과 반바지의 편한 옷차림을 한 세 명의 여자들이 모여 있었다.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장떡이 너무 예쁘다’며 칭찬을 했다. 그러더니 ‘내가 튀긴 깻잎, 너무 잘 튀겼죠!’ 라며 칭찬을 유도했다. (요리가 모든 끝난 후, 서로가 칭찬하던 요리는 둘 다 손도 대지 않았다는 넌센스)
이 민망함은 오직 나의 몫인가? ㅋ
정말 소꿉놀이의 한 장면을 30대 이상 어른 세 명이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 처음 프라이팬을 만져 본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서로 칭찬하고, 웃기 시작했다.
개그 프로그램을 옆에서 보는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님께 요리재료에 대해 질문드렸고, 남는 식재료로 김밥을 만들었다.
김밥 옆구리가 터지면 어쩌나 했는데, 성공이었다. 아주 소소한 것에 웃음이 나왔다. 누가 인정하지 않아도, 세 명이 따돌렸어도 상관없었다.
스님은 요리 틈틈이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 인생의 힘든 시기가 오면 기도를 해야 한다, 참고 또 참는 게 인생이다’라는 어제 말씀이 가슴 깊이 울렸다.
일주일 만에 뵌 스님은 실외 사찰행사를 삼 일간 치르고 나서, 이틀을 꼬박 앓다가 오셨다고 했다. 작은 얼굴이 더 작아지고, 수척해진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러자 한 수강생이 위로 대신 ’더 예뻐지셨다’라고 말씀드리며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어쩜 저렇게도 예쁘게 말씀하실까.
’ 수척해지셨다 ‘라는 말 대신 ‘살 빠지셨다’, ‘예쁘다’라는 대답을 들려주신 수강생의 말은 듣는 이의 얼굴에도 미소를 만들었다.
요리를 배우러 온 수업이지만 이곳에서 나는 말에 대해서, 마음가짐에 대해서 깨닫는 시간이어서 더 좋았다.
마지막 수업, 같은 조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내 몫을 묵묵히 해냈다. 모든 요리가 끝나고, 다시 설거지를 시작했다.
유종의 미! 그릇을 닦는 데 빨리하라는 말 대신 그릇을 탁탁 치며, 눈치를 주는 3인방. 뭉친다고 본인들이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데, 그러거나 말거나 내 속도대로 그릇을 씻었다.
그들이 만든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고, 내가 만든 분량만 포장하는 모습에 황당해하는 3인방.
황당한 3인방 마음은 그들의 몫, 스님의 말씀과 따뜻한 수강생의 말씀, 포장한 음식만 집에 가져왔다.
누군가의 힘을 뺏는 말, 누군가에게 힘을 실어주는 말, 말과 말속에서 피곤한 하루가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