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의 시공간

김찬호, '모멸감'

by 그럼에도


영화, '기생충' 박사장이 냄새에 코를 막는 장면

3장. 모멸의 스펙트럼

모멸은 모욕하고, 경멸하는 것, 즉 마음으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또는 무심코 격하시키고 그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 상대방을 비하하고 깔아뭉갬으로써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다. 그러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 모멸감이다.


4장 인간적인 사회를 향하여

6) 환대의 시공간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자기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해 무지하다. 또는 치에처럼 현실의 조건에 발이 묶여 있거나, 유시앙의 경우처럼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자기 안에 있는 열정을 억누르며 살아간다.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고정관념이나 사회가 부여한 편견에 의해서 일정한 틀 안에 자신을 가둬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 그 굴레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다. 내가 보지 못했던 재능을 상대방의 눈으로 발견하게 되고, 삶을 나누는 가운데 새로운 꿈의 씨앗이 뿌려진다.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싹을 틔운다. 그리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두 사람만의 관계로는 한계가 많다. 다양한 시너지가 일어나고 변화가 안정적으로 지속되려면 선線에서 면面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적인 만남에서 공적인 세계로 확장되어야 한다. 인간은 사사로운 삶의 공간에서 친밀감과 평온함을 누리지만 그것을 넘어선 공공의 세계에서 자기의 존재 가능성을 확대한다. 낯선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고 공동의 경험과 공적인 서사를 창출하면서 더욱 고양된 자아를 만날 수 있다.


중략


샘 킨이라는 작가는 말했다. "자신을 아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열림 마음과 가슴으로 듣는 신뢰할 만한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을 스스로 들으면서 우리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영화 '기생충'의 마지막 장면 중 박사장은 가장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 이유는 모멸감. 동기와 행동은 단순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누군가의 존엄성과 존재감을 건드렸다는 것은 누군가의 '역린을 건드린다'와 동의어이다.


모멸감은 오프라인 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페북, 인스타, 카톡 단톡 방처럼 온라인, 다수가 모여서 바라보는 공동의 공간 속에서도 흔히 일어난다. 모멸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는 못했지만 순간순간 나를 바라보는 잔인한 시선과 무심코 또는 의도적으로 던지는 한 마디에 내 마음이 주저앉아버릴 때가 있었다.


'내가 예민한 건가? 아니면 '내가 쿨하지 못한 지질함을 갖고 있는 건가?'라며 남에게 받은 모멸감이라는 화살을 다시 나에게로 한 번 더 쏘게 된다.


책에서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꼈던 모멸감의 아픔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으로 해결된다고 말한다. '환대의 시공간'이라는 안전한 관계를 통해서. 타인을 통해서 상처를 주고받지만 타인과 함께하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나의 다양한 모습과 가능성을 알아나가는 것.


나의 '존재감'을 알아간다. 누가 나를 모욕한다 해도 존엄한 나의 세상을 열어나간다.

가을을 잊고 있었는데, 오늘 길가에서 만난 코스모스가 바람결에 흔들리면서 나를 배웅해줬다.


흔들리는 코스모스처럼 마음을 부드럽게 ~ 가을 하늘처럼 단단하게 ~


그림 https://www.pinterest.co.kr/pin/591590101029026625/visual-search/?x=15&y=10&w=479&h=319&cropSource=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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