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이 그립다는 게 뭔지 좀 알 것 같은 나이가 되었다
“뭔가 심심한데?” 밥상머리 아버지의 단골 멘트가 시작되면, 우리 삼남매의 숟가락질은 빨라진다. “아무래도 뭔가가 빠진 것 같아.” 그러고는 자리에 일어나 양념통이 즐비한 찬장으로 향하는 아버지. 정성 들여 차린 음식에 길들여진 ‘입맛대로’ 양념을 치는 아버지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 사이에 서늘한 기운이 드리운다. 이럴 땐 빠르게 놀리던 수저를 그만 내려두고, 바삐 식탁을 떠나는 게 상책이다.
“어째, 우리 어무이가 하던 맛이 안 난다.” 아버지의 요구는 전라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엄마에겐 가당치 않다. 엄마는 ‘그 어무이의 맛’을 직접 경험해본 적이 없다. 시어머니와 그리 애틋한 사이가 아니었음은 물론이오, '어무이 손맛'이라는 건 지극히 주관적인 아빠의 기억일 뿐이다. 게다 매일 아침 5인의 식탁을 차려내고, 바리바리 도시락을 싸고, 셋씩이나 되는 아이를 등교시켜야 할 엄마에게 아침시간은 전쟁일 뿐. 경상도 남편의 입맛을 고려할 여유 같은 건 없다.
경상도에서 온 남자, 전라도에서 온 여자. 너무도 다른 둘 사이의 ‘맛의 거리’를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그리하여 찾은 중간지점은 다름아닌 애들 입맛대로. 모든 음식의 선정과 간을 아이들에게 맞추는 거다."애들이 좋아하니까, 그냥 먹어요. 다 큰 어른이 무슨 반찬투정이야.” 그럼에도 여느 때처럼 양념통을 향해 손을 뻗는 낌새가 포착된다. 세 명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간이 하나도 안된 질긴 고무줄 같은 고사리를 꾸역꾸역 씹어 넘기면, 아버지의 뻗었던 손이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온다. ‘셋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을 연기하기 전에 셋 중에 누구하난 영양실조가 걸릴지 모른다. 부부싸움을 방지하고자 타협을 찾은 '애들 입맛대로’는 우리 삼남매에게 오랜 인내와 선의의 거짓말을 강요한 셈이다.
그래도 맛이란 어떻게든 결국엔 길들여지는 모양이다. 여전히 아버지는 여든을 바라보는 노모 앞에서 ‘어머니 음식이 최고’라며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운다. 그렇다고 예전같이 엄마의 요리 솜씨를 타박하거나 나무라는 일은 없다. 외려 밖의 음식은 도통 못 먹겠다며, 경상도 남자의 표현법대로 에둘러 음식 솜씨를 추켜세운다. 20년이란 세월이 엄마의 요리실력을 향상시켰는지, 아니면 아버지의 입맛을 길들인 건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서로 다른 지점에서 시작되었던 세 가지가 하나의 지점으로 모아졌다는 사실이다. 바로 아버지의 입맛, 엄마의 손맛, 그리고 삼 남매의 입맛. 우리도 더 이상 억지로 고사리를 씹어 삼킬 일이 없다. 사실 시간이 없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바깥에서 끼니를 해결할 일이 대부분이다. 그럴 때마다 왜 그리도 ‘집밥’ 생각이 나는 것인지.
“너도 시집가서 한번 살아봐. 매일 밥상 차리는 게 얼마나 일인지.” 엄마의 볼멘소리에 언젠가 나도 ‘엄마의 손맛’을 운운하며 반찬투정을 하는 미래남편과의 아침식사 장면을 떠올렸다. 순간 아찔해졌다. 나 또한 역시(우리 엄마가 그러하였듯이) ‘아이들의 입맛’이란 명분이 필요할 텐데. C사의 쌀밥과 O사의 북어 국, S사의 햄에 길들여져 있을 아이들의 입맛도 문제지만, 그 맛이란 걸 클릭 몇 번으로 인터넷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게 자못 씁쓸하다.
우리는 엄마의 손맛을 추억으로 기억한다. 그 추억은 음식과 함께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로 양념되어 있다. 간단히 3분이면 양식, 한식, 중식 할 것 없이 한끼를 뚝딱 해결할 수 있는 요즘. 아이들에겐 엄마의 손맛은 추억이라기 보다 잘 만들어진 공산품에 가깝다.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구입하여, 먹고 치우면 그만 인 것. 브랜드 스토리는 있어도 사람의 이야기는 없는 맛. 굳이 추억할 이유도 그럴 필요성도 없는 것이다. 그래선지 집밥 만들기가 그리도 열풍인가 보다.
2012.9월 한창 작문연습때 쓴 글을 조금 각색.
우리 셋이서 도란도란 밥먹던 때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