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스타일보다 더 바꾸기 어려운 그 누군가의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
“솔직히 말씀 드리면, 그 쪽은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매사 직설적이고, 솔직하지만 그에게만큼은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던 A는 결국 이 말을 꺼내고야 말았다. 이 남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눈치가 없다. 한 눈에 봐도 많이 작다싶은 키에 한 손에 잡힐 것 같은 가느다란 팔목. 바람이 불면 ‘훅’하고 날아가버릴 것 같은 여리여리한 외모는 이번 소개팅도 역시나 ‘헛물’을 켰음을 감지하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어딜 가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기까지 하는 태도까지. 맘에 차지 않는 요소들을 주말저녁 사람이 들끓는 강남역 한복판에서 선 A는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나 집에 돌아갈래.”
그래도 "그녀는 예뻤다." 하늘에서 온 천사는 아니었지만, 지상의 날개 없는 천사쯤은 될 터였다. 친절한 미소, 대화를 이끌어가는 여유로움, 경청하는 자세까지. 첫째는 주선자를 생각해서였고, 둘째는 어차피 안 볼 사이에 서로 기분상해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다음 날부터 쉴새 없이 오는 문자메시지와 애프터 신청. ‘저번에 XX씨가 말했던 영화 상영하는 곳을 알아냈어요. 이번 주말 시간 어떠세요?’ ‘이번 주말은 친구들과의 여행, 다음 주는 가족모임과 경조사, 평일에는 매일 야근이 잡혀있네요.’ 그러나 눈치없는 그는 억지스러운 핑계거리를 만들어내도 좀처럼 알아듣지 못한다. 이런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돌직구'뿐이다. "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당신은 그저 ‘내 스타일’이 아닐 뿐이네요. 우리는 인연이 아닌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서 하루 동안 본 당신의 외모나 태도에서 매력을 전혀 찾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이네요.” A는 사실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단, 마음속으로 말이다. 때로는 마음의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는 염력이 필요한 법이다. 남자는 그녀의 세련된 거절방식을 두 가지로 오인한다. 그녀의 ‘스타일’이란 것이 유별나게 특이한 구석이 있어서 보통남자인 나와 맞지 않는다. 상대방을 원인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스타일’이란 류의 것쯤이야 노력하면 금방 바뀔 수 있으리란 생각. 스타일을 가치절하 하는 것이다.
만약 상대가 이성에 대해 유난히 독특한 취향을 가지지 않았다면, 내가 대한민국 보통에 미치지 못한다는 불편
한 사실과 직면한다. 조금 충격적일 수는 있다. 그래도 현실을 인식했다는 점에선, 개선할 여지는 남아있다. 단, 이 스타일이란 것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이나 안경, 옷, 화장과 같은 것들을 가리켰을 때 말이다. 두꺼운 안경테에 가려진 흔한(?) 여자가 안경을 벗자마자 꽃미녀가 된다. 뚱뚱한 몸매에 가려져 있던 그가 폭풍 다이어트로 여심을 자극하는 훈남이 되어 돌아오는 것은 TV나 영화 속 얘기만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스타일은 돈과 시간, 노력이 겸비되면 꽤나 쉽게 얻어지는 것들이다. 이런 ‘스타일’ 쯤이야 금방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스타일이 한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aura)를 의미할 때 생긴다. 이건 어쩔 도리가 없다는 점이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온 습관이나 행적, 생각이 겹겹이 쌓여 이루어진 분위기는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도 아니고, 유행을 따르는 것도 아니다. 이건 그의 인생관이자 삶의 방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타고난 연기자가 아닌 이상에야 연습한다고 꾸며낼 수도 없다. ‘스타일 위장’이 불가능한 것이다. 원판 불변의 법칙은 이렇게 ‘스타일 불변의 법칙’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주말저녁 도심 한 복판엔 ‘내 스타일’을 찾아 방황하는 젊음들이 어색한 인사를 나눈다. 그들은 결국 외친다. “나 집에 돌아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