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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랭보 Apr 30. 2020

우리 이모

이모를 떠나보내고 이모의 물건을 정리하며

‘휠체어를 탄 이모’

내 어릴 적 기억에 우리 이모는 언제나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당시에 이모 나이가 40대 중반 정도였을 거다. 우리 이모는 친구들이 보통 이모라 부르는 엄마 또래의 젊은 여자가 아니었다. 어릴 적의 난 긴 생머리를 하고 잘 꾸민 옷차림에 화장을 하고, 분 냄새가 나는 세련된 회사원 이모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친구들의 이모는 맛있는 케이크도 사주고 놀이공원에도 데려가 주었는데, 왠지 이모라는 존재는 꼭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친구들의 이모와 달리 우리 이모는 항상 아팠고, 재잘거리는 아이들 소리에도 쉬이 지쳐했다. 비교적 고분고분 했기에 나와 동생들을 친조카들보다 더 예뻐했다. 동생이지만 아마도 나이 차이가 아주 많이 났던 막내 여동생의 아이들이라 더 귀여워했던 것 같기도 하다. 분명한 건 외사촌 동생들은  다소 과격하게 짓궂고 시끄러워서 예민하고 자주 아팠던 이모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 이후로 최근까지도 성장과정 내내 사촌들과 나는 비교대상이 줄곧 되곤 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취직을 하는 등 인생의 몇 가지 성취가 일어나면 이모는 나를 치켜세웠다. 엄마 고생하는 걸 잘 알아서 ‘알아서 공부 잘하고 할 일 잘하고 똑 부러진 조카’. 하지만 외사촌들 앞에서도 그랬던 나머지 사촌동생들은 이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듯하다.


이모가 언제부터 왜 아팠는지 정확히 물어본 적은 없다. 내가 태어나서 이모라는 존재를 알았을 때부터 우리 이모는 ‘아픈 사람’이었다. 여러 가지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기에, 엄마를 비롯한 삼촌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듣기론 시집을 갔는데 아이를 갖지 못하는 바람에 남편과 헤어지게 되었고, 그 이후로 몇 년 뒤 이유 없이 여러 가지 명확치 않은 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걷지 못하게 되어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지만, 내가 중학교 무렵에 외삼촌의 지극정성으로 수술을 해서 조금씩 걷게 되었다. 그렇게 한 십 년을 지팡이에 의지해서 종종 걸을 수 있게 됐다.


대략 6년 전부터 이모는 집에서 생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인근 요양병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엄마를 따라 종종 이모를 보러 갔었는데, 아마 조카들 중에는 가장 자주 이모를 보러 갔었을 것이다. 하지만 6년 전 무렵 막냇동생을 잃고 나서는 병원 트라우마 같은 것이 생겨버려 병원에 가보지 않았다. 이모가 아팠지만  몇 년간은 이모를 보러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일한 자매였던 엄마는 이모를 외면하기 어려워 병원에 가야 했다. 나는 그 무렵 아픈 이모가 엄마를 고생시키는 것 같아 괜히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병원 주차장까지 갔지만 병실에는 올라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엄마 혼자 병원에 가게 하고 싶진 않아서 따라갔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웃을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그 후로 시간이 흐르고 많이 헝클어졌던 내 삶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때, 이모를 보러 갔다. 한동안 오지 않았던 조카에게 서운할 법도 했겠지만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걸 알기에 이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근에 이모를 마지막으로 봤던 건,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요양병원에서였다. 설 연휴가 지나고 작게나마 용돈을 챙겨 맛있는 걸 드시라고 하고 평소보다 조금 오랫동안 이모 곁에 앉아서 손도 잡아드렸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 최근에 응급 상황이 생겨 큰 병원으로 왔지만 코로나 때문인지 중환자실에 직계가족이 아니라 들어갈 수 없었다.


“이모가 돌아가셨다.” 엄마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대학원 과제를 하러 밖에 나갔다가 부랴부랴 짐을 싸들고 챙겨서 빈소로 향했다. 70년을 혼자 외롭게 살았던 이모, 반 평생을 아팠고 다른 사람의 손이 필요했던 사람. 나와 엄마는 장례를 하는 동안 거의 울지 않았는데, 화장터에 가서 재가 되어버린 이모의 몸에서 철제 소재의 다리 고정 핀과 지지대가 한 움큼이나 나온 것을 보고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 무거운 쇳덩이를 몸에 앉고 몇십 년을 살았던 우리 이모가 이제는 좀 편해졌으면 좋겠다. 좋은 곳에 가서 편히 쉬세요.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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