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랭보 Oct 02. 2021

노동의 쓸모

살다 보면 일이 필요할 때가 있다. 노동의 의무가 필요한 순간

"그만두고 싶다." 요즘 계속 머릿속에 맴돌고 종종 내뱉는 말이다. 직장생활이 10년이 넘어 가는데도 주기적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이번엔 과거의 퇴사 기원 주문과는 그 결이 조금 다르다. 그 간의 퇴사 욕구는 원인이 어느 정돈 분명했고 구체적으로 왜 인지 설명할 수 있었다. 가령 아래의 4가지 정도로 분류될 수 있다.


1.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맘에 안들 때.(혹은 지금 속한 집단이 맘에 안 드는 경우)

2. 같이 일하는 사람이 이상하고, 맘에 안 드는 경우.(대부분은 관리자, 가끔 동료)

3. 회사 밖의 사적인 일들이 잘 안 풀리니, 회사가 다니기 싫다.(연애나 집안일 문제 등)

4. 별로 할 말은 없는데 굳이 맘에 들지 않는 걸 꼽자니 '회사' 밖에 없을 때.(회사=동네북)


하지만 직장생활 11년 차에다가, 사기업을 거쳐 공공기관 중간 직급이 되고 보니 굳이 특별히 왜? 퇴사를 하고 싶은가에 대해 말할 것이 없다. 퇴사 후 구체적 계획이나 하고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다니기 싫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 그러다보니 어디 하늘에서 돈이나 뚝딱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만 하게 된다. "그냥" 만큼 무서운 이유는 없다.


그동안 직장생활에서 근로의욕이 바닥을 치고, 인간에 대한 환멸이 생길 때마다 '니체의 말'의 구절을 떠올리며 버텼다. 니힐리즘을 주창한 이 철학자에 대해 깊이 안다고는 못하지만 그의 저서를 읽어보면서 노동, 일에 대한 가치와 쓸모를 생각하는 지점에서는 깊은 공감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매번 사표를 던지고 욕 한 바가지를 퍼붓고 싶은 순간마다 집요하게 일의 쓸모를 찾아내곤 했었다.


니체는 말했다. "일이란 좋은 것이다"

니체가 말한 것처럼 우선 일이란 것을 좋은 것으로 규정하고 그 지점에서 노동의 좋은 점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그 시작은 '돈'이다. 그런데 끝도 '돈'이 된다. 이 수단이자 목적인 '돈'이란 녀석의 쓸모는 곧 노동의 쓸모 그 자체인 것처럼 결론이 난다. 하지만 돈의 이슈로 넘어가다 보면 왜 우리가 굳이 남의 돈을 받아 시간을 저당 잡혀 노동을  하는 노동자(aka. 노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가 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렇다고 너도나도 사업하자는 흐름에는 반대한다. 어느 정도 사회 물을 먹은 이들이라면 자신의 메타인지로 내가 과연 CEO 재목이 되는지는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직업은 우리들의 생활을 지탱해 주는 기반이 된다.
기반이 없다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일에 종사한다는 것은 우리를 악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쓸데없는 망상을 품는 것조차 잊게 만든다. 기분 좋은 피로와 보수까지 선사한다.


악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니체의 의견에는 일정부분 동의하게 된다.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는 각종 임원보고, 80년대 군사정권에나 있을 법한 의전을 비롯, 의미 없는 숫자를 만들어 내서 의미를 찾고, 또 쓰레기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 회의를 개최하여 무한 페이퍼를 양성해내는 일을 하다 보면 도박을 하거나, 술에 취하거나, 게임에 중독된다거나 하는 에너지 조차 남아있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니체처럼 기분 좋은 피로는 아니지만 만성피로에 시달리게 되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가면 매달 월급 날짜에 충분하지도, 그렇다고 크게 부족하지도 않은 애매한 금액이 통장을 스친다.   


인생이나 생활에서 우울한 일을 당했을 때, 익숙한 직업에 몰두함으로써 현실의 문제가 초래하는 압박감과 근심에서 벗어나 조용히 물러서 있을 수 있다. 힘들면 도망쳐도 상관없다. 끊임없이 싸우며 고난을 겪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만큼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자신의 마음을 너무 괴롭히지 말라. 자신에게 주어진 직업에 몰두함으로써 걱정거리에서 멀어져 있는 동안 틀림없이 무엇인가가 달라진다.


니체가 말하는 노동의 쓸모와 직업의 가치에 있어 가장 와닿는 구절이었다. 인생에서 질서가 사라지고, 평온이 깨져서 모든 균형이 흐트러졌을 땐 '직업'이 있다는 것, 아침에 눈을 떠 일어나 씼고 사람행색을 하고 어딘가로 갈 '직장'이 있다는 것 처럼 큰 보험은 없다. 가능하면 그런 불행이 인생에 벌어지지 않는게 가장 베스트이겠으나, 사람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서른 이후 내가 버티고 살아가기 위해 택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냥 매일 주어진 일을 끝내고, 굳이 일의 가치, 노동의 의미 따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 이런 상황에서는 생각해봤자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직업에 몰두함으로써 틀림없이 무언가 달라진 것은 있었을 것이다. 지금 또 다시 거의 몇 년만에 다시 노동의 가치니 뭐니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걸 보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내가 살만해진 것이 아닌가 자문하게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