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어야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
<타임> 지 기자를 거쳐 세계적인 여행작가가 된 피코 아이어는 '그만두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다음으로 넘어간다는 뜻이다. 뭔가가 당신을 수긍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신이 뭔가에 수긍할 수 없어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불평불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선택이고 인생 여정의 종착역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걸음이다.
팀 페리스 <타이탄의 도구들 > 중
올해 직장생활 10년 차가 되었다. 한 공간에서 크게 바뀌지 않는 똑같은 사람들과 꼬박 10년을 보낸 셈이다. 타이트한 예산과 인력운영을 하고 있는 공공기관에 근무하기 때문에 새로운 젊은 피의 유입은 상대적으로 적다. 예전에 사기업 다닐 땐 “신입사원이 조직의 활력”이란 소리도 많이 들었다. 사기업처럼 이직이 잦은 유연한 문화에 속해 있다면 다양한 경력직이 들고나기 때문에 변화도 더 있을 테지만 내가 속한 조직은 매우 잔잔하다. 나쁘게 말하면 침체되어 있다. 젊은 피는 곧 기존의 찐득하고 무거운 피에 흡수되거나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 채 둥둥 떠다니게 된다.
나는 그럼 이 조직의 피에 섞였느냐 묻는다.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조직에 순응한 듯하다가도 어느 날엔 마음에 불길이 일어 이곳을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10년 전과 차이가 있다면 그때의 나는 꿈이 있었다는 것 하나 일 것이다. 지금은 꿈을 잃은 대신 삶의 무게를 좀 더 체감하게 됐다. 밥벌이는 고단하지만 밥그릇의 무게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몇 그릇의 밥을 먹어야 이곳을 떠날 수 있을까.
조직생활을 하면서 반쪽짜리의 나로 사는 게 너무 익숙해졌다. 사람이 매 순간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나? 그 괴리를 무슨 큰 거짓이라 생각했던 어린날의 나를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회사 안에서의 나의 인격과 실제의 나 간의 괴리가 심해질수록 삶의 만족도는 떨어진다고 여겼나 보다. 그런데 이게 10년이 넘다 보니 이마저도 익숙해졌다.
10년 정도 한 곳에서 큰 탈 없이 매일을 출근하고 살았으니 이제는 졸업을 좀 하고 싶다. 또래들이 육아휴직이다 해서 잠시 쉼표를 찍지만 그렇다고 별로 내키지도 않고 하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결혼을, 육아를 생각할 수도 없다. 매일은 그래도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살아내고 있지만, 그 바쁨 속에서도 삶이 너무나 지루하다. 십 년 뒤 이 십 년 뒤? 이 조직에서 인정받고 유능한 선배 직원을 보면 한숨이 난다. 물론 인격적으로도 능력으로도 빠지지 않는 이들이지만, 그들처럼 사는 삶이 썩 흥미롭지도 내키지도 않는다.
더 재밌는 일이 어딘 가에 있지 않을까. 일 안 하고 노는 건 내 취향은 아니기에 요새 유행한다는 파이어 족이 되고 싶진 않다. 그냥 의미 없는 일, 삶을 성장시키지 않는 일을 멈추고 싶다. 누구의 공을 치켜세워주기 위해, 인정받고 싶어서 일하기도 싫다. 나이 들어감 속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건 뭘까? 의미 있는 내 일을 찾아 독립적인 주체가 되는 것인지, 현실에 순응하며 즐기고 사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정답이 있는 문제이겠나. 결국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게 되겠지. 지금 이 순간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 가려면 지금, 현재에 무엇보다 집중하고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