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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랭보 Oct 01. 2022

도심 속 숲에서 피톤치드 향기 맡기

여름의 끝자락 평일 어느 날, 서울숲 걷기

몇 년 만인 지도 모르게 참 오랜만에 낮에 햇볕을 쬐며, 하염없이 걸었다. 목적지도 없이 걷다 보니 새삼 이 숲이 이렇게도 좋았었던가 싶었다. 9월인데도 아직 따가운 볕을 피해 그늘진 평상에 누워 낮잠을 자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회사원으로 보이는 이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산책을 하고 있었다. 나도 분명 자연경관이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항상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지난 2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참 여유 없이도 살았었나 보다. 덕분에 운동 부족, 햇볕을 쬐지 못해 비타민D 부족 증세를 달고 살았고 골감소증에 이어 골다공증 판정까지 받게 됐다. 그래도 아직 나이가 젊으니 잘 챙겨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희망을 갖게 됐다. 신기하게도 점차 수치가 좋아지는 걸 보니, 몸을 과하게 혹사시켰던 건 아닌지 스스로 미련하게 굴었구나 타박하게 된다. 그놈의 졸업장을 기어코 받아낸 올 가을에는 시간 나면 무조건 걷기를 습관화하기로 마음먹었다.


2년 전 학교를 가기 위해 부서 이동을 신청하여, 집 근처 본사가 아닌 경기도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걷는 행위와는 멀어지게 되었다. 보통 외곽도로 루트로 가는 회사 통근버스를 타거나 자동차 40킬로미터의 장거리 운전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직립 보행하는 인간임을 잊고 살았었다. 그럼에도 불구, 살찌는 게 싫어서 헬스장 러닝머신 위에서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기도 했다. 그러나 흙먼지를 일으키며 땅을 밟고 숨을 들이 내쉬는 걷기와 러닝머신 걷기는 엄연히 다르다. 둘 다 같은 운동의 카테고리일 수 있으나, 전자는 때로 가혹한 고문에 가까운 행위다. 실제로 러닝머신의 기원이 고문 기계였다는 걸 어디서 얼핏 본 것 같다. 시간과 속도가 기록되는 제자리걸음을 통해 스스로 자처한 샐러던트의 스트레스를 잠시 잊을 수 있었으나, 그 스트레스가 비어진 자리에 새로운 것이 들어찰 여지는 없었다.


숲을 거닐며 마스크를 내려 호흡을 내쉬어 보았다. 사람을 멀리하며 살았으니 여태껏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은 행운도 있지만, 일주일 씩 자리를 비우는 사람들을 대신해 펑크 난 일을 하는 것도 이제는 너무 지친 상태였다. 그 와중에 평일의 서울숲 나들이는 기대하지 않았던 안식을 선물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 속 이렇게 울창한 숲이 있다니, 서울 촌년답게 아직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것이 이리도 많다니. 계절을 피부로 느낀 것도 오래간 만이었다. "인생 재미없다." "노는 것도 지겹다." 입에 달고 살던 이 말도 사실은 거짓말이었다. 나는 그냥 이렇게 목적 없이 걷고, 볕을 쬐며 사는 것도 노는 것이고, 이런 행위에서 행복을 느끼고 재미를 맛본다.  

예전에 가끔 주말 시간에 서울숲에 방문할 때가 있었는데, 힙한 성수동의 상권과 인접된 쪽으로만 거리 인파에 몰려 근방을 걸어 다니곤 했던 것 같다. 서울숲은 식사 후 디저트처럼 성수동의 핫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후, 배부름을 해소하려 들리는 곳이었다. 운동복 차림으로 한적한 화요일 오후에 방문한 서울숲은 그때 데이트를 하러 방문한 숲과는 완전히 다른 기분을 선사했다. 이 날은 정말 설렁설렁 느린 보폭으로 서울숲을 감상했다. 럭셔리한 호텔방에서 테라스 수영장에서 값비싼 여가를 즐기지 않아도, 숲길 걷는 이 행위만으로도 충분히 바캉스를 즐긴 것 같았다. 이렇게 가성비 좋은 만족감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니.


서울 숲 한 켠에는 동물들도 한낮의 선탠을 즐기며 여물을 먹고 있었다. "저게 사슴이냐?"묻는 멍청한 물음에 잘도 대답해주는 피붙이가 있기에 걷는 길이 심심하지 않았다. 같이 있어서 더 좋았지만, 혼자여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산책시간이었다. 일주일에 그렇게 두 시간쯤 별생각 없이 목적지 없이 걷는 일이 많아지길. 길어야 한 달 남짓 10월은 시간을 살뜰히 모아 걷기에 집중해봐야겠다. 운동을 위한 걷기가 아니라 사색을 위한 걷기. 이것도 취미라면 취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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