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랭보 Mar 28. 2024

웃기는 짬뽕같은 점심식사

 "점심약속 있나"는 질문에 나의 대답은 "항상 있지요."

"00씨, 점심약속 있어요?"

점심시간 30분을 앞두고 당일에 하는 질문의 의도는 뭘까. 점심약속이 있는지 확인하고 없으면 같이 먹자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없더라도 약속이 내키지 않으면 거절해도 되는걸까. 


사실 '답정너'인 질문이다. 차라리 나는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00씨, 000 임원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하네요. 별일 아니면 같이 하는거 어때요?" 라고. 

물론 행간엔 이러한 뒷말이 생략되어 있다. '사실 저도 참 가기가 싫지만, 갑자기 가자고 해서 전달하네요.'

나는 차라리 이 생략된 말도 그냥 육성으로 내뱉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럼 의사결정이 더 쉬울 것 같다.


물론 질문을 한 분은 나를 배려해서 정말 개인적인 약속이 있다면, 참석하지 않아도 좋다고 나를 중간에서 방어해준 걸지도 모른다. 나는 나름 접근하기 어려운 MZ세대이니까. DMZ(비무장지대)는 아니다. 


엉겹결에 유쾌하지 않은 점심 벙개 모임에 나보다 바로 윗 선배와 한참 아래터울의 후배도 초대되고 말았다. 그 초대의 주체는 본의아니게 내가 되었다. 어르신들과의 식사에 조인하라는 지시사항이 나에게 마치 다단계 화장품 방판처럼 떨어진 것이다. 점심시간 10분 전에 예의가 절대 아닌걸 알지만, 사내 메신저로 묻자 대답이 없어 전화를 걸었다.


선배는 망설이다 물었다. "너는 가는거지?"(한숨)

"네, 저도 가야죠."(깊은 한숨)

"그래 나도 갈게."


이어서 소환된 후배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p야, 000임원이 점심먹자고 되는지 물어보라고 한다. 점심약속 있니?(내가 먹자는 아니다, 나도 끌려간다)

"어....저 약속이 있는데, 금방 다시 바로 연락드릴게요."


그리고 1분 남짓, 아니나 다를까 이 친구도 선약을 취소하고 이 쪽으로 합류했다. 자기는 Semi MZ세대라서 이런 요청에 거절하지 못한다는 말도 했다. 

"네가 거절했으면, 나도 그걸 발판삼아 이제 계획되지 않은 점심약속을 거절할 수 있었어."

비겁하게 후배를 핑계삼아 본다. 


진짜 하루 한시간 남짓 밥먹는 시간은 사전에 예고없이 식사 요청을 하지 말았으면 한다. 나는 매일 내 자신과 점심약속이 있다. 이제부터 다이어트를 한다고 해야하나 싶은데 그런 거 치고는 살이 전혀 빠지질 않으니 사면초가 상태다. 나중에 나는 위로 올라가면, 임원이 된다면 혼자 밥먹는 임원이 되겠다. 

그런데 어차피 임원은 안될 것이다. 웃기는 짬뽕같은 오늘 점심 이야기를 토해내본다.

그래도 짬뽕은 맛있었는데, 혼자 먹었으면 더 맛있게 남기지 않고 다 먹을 수 있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막내동생 베프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