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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랑별 Nov 30. 2022

경험치를 쌓아가는 중이랍니다.

비교하다 큰 코 다친 펄럭귀 아줌마의 깨달음 에세이


  아이의 2층 침대 구입을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이었다. 검색창에 2층 침대를 넣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구입 후기가 담긴 블로그로 진입하게 되었다. 높은 층고에 취향을 반영한 맞춤 벙커침대, 아기자기한 샹들리에까지. 그야말로 ‘넘사벽’, 취향저격이다. 구입 후기 말미 ‘인스타도 있으니 구경 오세요’라는 문구에 망설임 없이 링크를 눌러 모르는 여자의 인스타그램을 둘러본다.


  요즘 나의 로망인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다. 잔디와 꽃이 있는 정원, 차양막까지 설치된 아이 전용 미니풀장. 어디 다른 피드를 보자. 식탁 위에 놓여있는 꽃병. 공간 하나하나 딱 들어맞는 인테리어, 구석구석 정돈된 모습. 살림에 요리까지 잘하는 여자인가 보다. 육아도 살뜰히 잘하고, 양가 부모님의 지원도 든든해 보인다. 이렇게 다 가졌으면 얼굴은 좀 못생겨라 하는데, 이럴 수가! 애 둘을 낳았는데 얼굴도 예쁘고 군살도 없다. 종합해 보니 요즘 내가 꿈꾸는 ‘여유로운 전업주부’이다. 그래도 ‘딸은 우리 딸 얼굴이 예쁘네.’ 하며 나 스스로에게 소소한 위로를 던지며 피드에서 빠져나왔다.



  새벽으로 향하는 밤늦은 시간, 2차 탐색이 시작된다. 이미 2층 침대 구입은 뒤로 밀렸다. 아까 그 여자의 예쁜 정원이 담긴 피드에 누군가 어느 동네냐고 물었고, 댓글에 여기여기를 알아보았다고 했는데 그 ‘여기, 여기’에 있는 단독주택을 검색해본다. 지금 우리 상황에 범접할 수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냥 알아본다. 그날 새벽 짧지 않은 시간을 목적 없이, 소득 없이 보냈다. 분명 시작은 딸아이의 2층 침대 검색이었다. 그래 맞다. 내가 몇 년 전 카카오스토리 이후로 SNS를 하지 않았던 이유가 떠올랐다.


  우연히 보게 된 책이었나, 피드였나. 누군가 그린 그림과 짧은 글이었다. 첫 번째 컷은 정돈된 테이블 위 예쁜 잔에 담긴 커피 사진과 함께 ‘여유로운 나만의 시간’이라는 문구의 피드가 나온다. 뒤이어 그 집의 전체 모습을 그린 그림이 나오는데 거실이 온통 아이들의 장난감과 빨랫감들로 엉망이고 소파 앞 ‘테이블’만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이었다. 그걸 보며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머쓱해졌다. 그 뒤로 이런저런 이유로 나와 내 삶을 공개하는 SNS를 수년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놓치는 게 아쉽고, 나의 삶의 단상을 기록하기 가장 손쉬운 수단이라 생각해서 최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삶은 내게 ‘경험치’를 쌓게 해 주었다. 돌아보면 인생의 8할이 경쟁심이었을 만큼 어린 시절부터 나는 누군가와 비교하며 나를 자극했다. 다행스러운 건, 그런 경쟁심이 포기와 좌절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게 하고, 나를 발전시키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비교와 발전의 밸런스를 맞추며 살아오다 비교가 탓하기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신혼 때였다. 비슷한 또래, 비슷한 벌이, 그래서 비슷하게 살던 삶이 결혼과 함께 달라졌다. 비슷하지 않아 진 것이다.


  누구는 대출 없이 새 아파트로, 시댁 혹은 양가의 지원을 받아 넓은 집으로, 또 누구는 두 사람의 상황에 맞게 고르고 고른 전셋집으로. 나는 좀 다르긴 했지만 후자에 가까웠으므로 넉넉히 시작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오면 나도 모르게 남편 탓이 되었고, 그러다 언성을 높이며 싸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에게 참 미안하다. 친구를 만나고 와서는 “누구네는 이렇게 하기로 했대.”하며 포문을 여는, 앞으로 어떤 전개로 이어질지 뻔한 대화가 얼마나 싫었을까.


  결혼 시작과 함께 벌어진 격차를 좁히고자 우리 부부는 공격적인 투자를 택했다. 얼마간은 수익이 정말 쏠쏠했다. 이 기세로 몇 년만 잘 지나면 격차를 금방 좁힐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달콤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우린 쓰디쓴 실패의 잔을 마셨고, 동지애가 두터워졌다. 인생의 큰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 있는 동지가 된 것이다. 비싼 돈 주고 얻은 ‘찐 부부애’다. 전쟁 중에 사랑이 싹튼다고, 힘든 시기를 극복해 나가며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꼽는 귀염둥이 딸, 아들 금메달 남매를 낳았으니 이만하면 후회 없다.




  정신  차릴 정도의 강펀치에 쌍코피를 흘리며 극복해가던 우리어느 정도 해답을 찾고 숨을 고를 즈음, 반갑지만은 않은 경험치 쌓을 기회가  찾아왔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혀 새로운 분야의 사업을 시작하게  것이다. 많은 자본금 없이 친구와 단둘이 시작했기에 처음에는  쓰는 일도 해야 했다. 해본 일이 아니니 무거운 기구를 옮기다  이곳저곳을 긁혀오고, 풀파워로 코를 골며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안쓰러우면서도 저럴 거면 박사학위까지 공부는   것인지 어느 날은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땀에 젖어 늦게 귀가한 남편에게 “둘이 뭐하고 다니니?”, “밥은 먹고 다니니?” 핀잔과 걱정을 섞은 내 스타일의 위로를 던지며 2년 넘는 시간이 또 흘렀다. 그동안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잘 극복하며 이제는 10명 넘는 직원을 둔 회사로 발전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내가 사업하는 사람의 부인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사업 잘된다 해도 내가 보는 덕은 별로 없다고, 오히려 주말 독박 육아만 늘었다고 불평하는 내게 남편이 말했다.

“조금만 더 고생하며 기다려줘. 곧 사모님 소리 듣게 해 줄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나도 말했다.

“왜? 목사님 되려고?”

둘이 또 배꼽을 잡고 웃었다.



  꽁냥꽁냥 사랑으로 꽉 채워져야 할 신혼 초, 경제적인 것이 너무 크게 느껴져 그들과 비슷하게 되려고 무리한 선택을 했다. 어리석은 비교에 이은 무리한 선택으로 우리는 맘고생을 해야 했다. 그때의 내가 어리석은 비교 대신 그때만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들을 누리며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도 그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행복이 더 값지고 소중함을 나는 안다.


  누군가가 나의 삶을 겉에서 쓱 본다면 ‘큰 굴곡 없이 잘 사네.’ 할지도 모르겠다. 유아기인 두 아이를 키우면서 전문적인 일을 하고, 자기 취미를 가지고 있으며, 새롭게 무언가를 배우는 여자. 네 가족이 한가로이 휴가를 즐기는 피드. 하원길 알콩달콩 사이좋은 남매의 모습. 이 중 어느 단락에서인가 나를 부러운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거고. 하지만 당연히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나는 여전히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2층 침대를 검색하다 알게 된 모든 걸 다 갖춘 듯이 보이는 그 여자분의 삶에도 어찌 치열한 고민과 그늘이 없으랴. 일렁이는 마음을 다잡고 좋은 자극만 받기로 결심한다. 어리석은 비교는 무리한 선택으로 이어지고, 무리한 선택은 쌍코피 흘리는 맘고생으로 이어지는 것을 몸소 경험한 내가 아니던가. 다른 것 말고, 깔끔하게 정리된 식탁. 저건 나도 할 수 있겠다. 식탁 위에 쌓인 아이의 학습지, 내가 읽던 책, 몇 주나 지난 아이의 유치원 가정통신문을 치웠다. 한결 낫다. 오늘도 이렇게 삶의 경험치를 쌓아 간다.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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