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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랑별 Dec 05. 2022

대한민국 축구, 보지 않겠습니다.(2)

16강으로 가기 전 포르투갈과의 경기는 토요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시작되었다. 금요일 밤 9시부터는 얼마 전 야심차게 시작한 글쓰기 특강 줌 수업이 있다. 쓰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불혹의 여자는 두 아이들에게 할 거리를 주고, 엄마 공부하니 1시간만 서로 존중해 주자고 한다.


남편은 어김없이 금요일 밤 8시 30분 농구하러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내 수업을 들으며 아이들을 케어하고 잠까지 재워야 하는 상황. 어쩔 수 없이 얼른 할 거 하면 '길 건너 친구들' 게임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선뜻 당근을 내민다. 지난 여름 사촌언니의 방문 때 알게된 간단한 휴대폰 게임은 아이들에게 요즘 소소한 낙이요, 효과 좋은 당근이다. 기분 좋게 협상이 타결되고 각자의 시간을 갖는다.          

     



10시면 끝나는 특강이지만 마지막 강의라 QnA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수강생 대부분이 아이 있는 엄마들이라 10시 20분쯤에 그냥 쉴 수만은 없는, 필사적으로 아이들을 재우고 상황정리를 해야하는 10분 정도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서둘러 아이들을 불러 2층 침대에 각각 한 명씩 눕히고, 얼른 잠을 자야함을 반복한다. 10년차 아줌마는 칭찬, 격려, 협박을 버무려 금방 아이들을 재우는 데 성공. 다시 줌수업을 듣기 위에 컴퓨터 앞에 앉는다.    


           

비장하게 다시 돌아온 100명이 넘는 아줌마 글쓰기 군단은 선생님의 말씀을 하나라도 놓칠새라 고개를 끄덕이며 필기를 하며 참여한다. 쏟아지는 질문과 함께 열성적인 강사님의 대답으로 예상 종료시간을 훌쩍 지났다. 결국 12시가 다 되어 우리 함께 응원하자며 마지막 질문을 받고 마무리가 되었다. 몽글몽글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엄마 사람의 새로운 꿈이 피어오르는 시간이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남편도 애들도 없는 아주 고요한 거실로 나왔다. 이 조명, 이 온도 모든 게 완벽하다. 거실 텔레비전을 켜니 곧바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아니, 이 무슨. 시작한 지 5분만에 포르투갈이 선제골을 넣었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내가 봐서 그런가?'    



무언가에 이끌리듯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방으로 들어와 노트북을 켰다. 전에 써 두었던 글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농구를 하고 돌아온 남편이 방에 들어와 같이 축구를 보자고 청한다. 내가 보면 꼭 지는 것 같다며 보지 않겠다 했다. 남편은 그런 게 어디있냐며 얼른 나와서 같이 보자고 한다. 나는 한 번 더 거절했다. 수정하던 거 마저 하겠다고. 잠시 후, 남편의 환호 소리가 들린다. 전반 27' 우리 나라 김영권 선수가 골을 넣은 것이다.               


남편은 다시 방으로 들어와 동점되었으니 같이 보자고 한다. 와! 동점이라니! 이러다 정말 이기고 16강 진출하는 거 아닌가? 그래 월드컵 응원은 같이 해야 맛이지. 나는 거실로 나왔다. 그러나 내가 보기 시작한 이후로 추가골 없이 1:1로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거실 한켠에 작은 동산을 이루고 있는 빨래를 개면서 중계를 보다가 그나마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정말 내가 보면 못 넣을 거 같아서.                




경기 종료 시간이 10분도 채 남지 않은 시간. 불혹의 아줌마는 마치 터미네이터가 "I will be back." 속삭이며 엄지를 올리고 사라지듯 비장한 마음으로 빨래통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정말이지 이렇게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이었다. 가나와 우루과이 경기에서는 0:2로 우루과이가 앞서고 있기에 이대로라면 우루과이가 16강 진출인 상황. 방으로 들어와 기도하는 마음으로 빨래를 접었다.            

   

남편의 환호소리다. 우리 나라 황희찬 선수가 추가 시간에 역전골을 넣은 것이다. 나는 거의 울다시피 하며 거실로 나가 말했다.      

"거봐. 맞지? 내가 안 봐야 한다니까."      

"야, 이제 진짜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남편도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다. 이제 거의 확실시 된 것 같다. 소심한 나는 혹시 몰라 남은 추가시간 경기도 보지 않았다.




드디어 경기 종료. 대한민국이 조1위 포르투갈을 꺾었다. 이후에 가나와 우루과이 경기 결과를 조마조마 기다리고 나서 우리 나라의 16강 진출이 확정되었다.             

  

산술적으로 6% 확률은 역전되어 100% 기적을 만들어 냈다. 12 만에 월드컵 16 진출. 시간을 거슬러 20  스무살, 산소학번의 나는 기적같은 대한민국 월드컵 4 신화의 역사 속에 열띤 거리응원을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불혹의 아줌마가 되어 우리나라의 경기는 재방송으로 봐야하는 운명이 되었다.


이번 16강  FIFA 랭킹 1위인 브라질과의 경기는 새벽 4시. 응원하며 보고 싶지만, 참겠다. 참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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