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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g Sep 19. 2017

12. 낮저밤이(2)

다섯 시쯤 되었으려나. 밤새 빽빽 울어대던 기운 넘치던 미드미는 신기하게도 다시 천사가 되었다. 두 시간에 한번 배고프다고 울 때 말고는 계속 잤다. H는 '미드미 잘 때 같이 자!'라고 말했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이론상 아가는 두 시간마다 깨서 먹으니 그 사이에 짬짬이 잘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가는 두 시간마다 깨서 먹긴 하지만 먹는 시간이 약 20분 정도 됐다. 그리고 그녀를 안고 트림을 시키는데 또 오분 정도 걸렸다. 그리고 그녀가 잠이 들면 나를 기다리는 것들이 있었다. 집안일. 빨래, 청소는 그렇다 치더라도 당장에 필요한 젖병은 씻어두어야 했다. 어영부영 한 시간 정도를 쓰고 누우면 바로 잠이 들었으면 좋겠는데, 아기가 어찌나 끙끙거리는지. 누웠다 일어났다를 대여섯 번 반복하면 다시 미드미의 식사시간이 돌아왔다. 그렇게 밤이 찾아왔고 정말이지 어김없이 그녀는 12시를 기점으로 반짝거렸다. 마치 휴대전화를 낮동안 이빠이 충전하고 새벽에 다섯 시간을 풀가동하는 느낌이랄까. 미드미는 울었다. 왜 우는 건지 모르겠는데 울었다. 낮밤이 바뀐 아기를 검색했다. 답은 비슷했다. '시간이 답이에요.'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다. 낮에 깨우기 위해 노력했다. 낮엔 시끄럽게, 밤엔 조용하게 해보라고 해서 낮에 라디오를 틀었다. 일부러 약간 크게 이야기했다. 낮동안 발바닥에 햇빛을 쐬어 주라고 했다.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발에 햇빛을 쐬어 주었다. 밤에 울어도 바로 반응해주지 말아보라고 했다. 십 분을 울리고 도저히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미드미는 여전히 낮밤을 몰랐다.

얼마나의 시간이 있어야 이게 고쳐지는 걸까. 그렇게 20일을 보냈다. 난 거의 폐인이 되었다. 사람에게 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잠을 못 자니 모든 게 감퇴했다. 신체적인 감퇴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고갈됨을 느꼈다. 머리끝까지 신경질이 났다. 인성의 바닥을 보이던 날, 나는 미드미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미드마!!! 지금은 밤이야!!! 밤엔 모두가 자는 거라고!! 그런데 넌 왜 안 자니!!!"

옆에서 자던 H가 놀라서 달려왔다. 진정하라고 했다. 순간 너무 미안했다. 미드미도 울고 나도 울었다. 엉엉.


그리고 그날, 언제 그랬냐는 듯 밤에 자고 낮에 깨는 생활이 시작됐다. 점차적으로 좋아지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뒤바뀌었다. 내 인성이 바닥을 보였던 그 날. 내 인생에 내가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던 그 날 이후로.




지금도 그날이 생각날 때면 미드미에게 미안해진다. 모든 사람에겐 시간이 필요한 것을. 특히나 사람을 키우는 일은 더 많은 인내를 요한다는 것을. 아직도 멀었지만 점차 배워가는 중이다. 아마 미드미는 나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있을 거다.


새벽녘, 골목 끝자락에 반짝반짝한 상점이 보였다. 새벽 두 시, 세시에도 그 반짝이던 상점에 사람들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하얀색, 노란색, 빨간색. 꽤 많은 조명이 반짝이는 상점이었다. 미드미를 안고 좌우로 흔들흔들하며 그 상점을 볼 때마다 대체 무얼 하는 곳일지 너무 궁금했다. 미드미가 밤낮을 잘 바꿔준 이후 한동안 잊고 살다 며칠 전 문득 생각이 났다. 달려간 그곳은 인형 뽑기 상점이었다. 나도 모르게 하하 웃음이 났다. 미드미가 날 보고 따라서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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