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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g Sep 12. 2017

11. 낮저밤이(1)

천국 같은, 그러나 천국인 줄 모르고 지냈던 조리원에서의 2주가 지났다. 조리원에서 창밖 너머로 신생아 케어를 어떻게 하는 건지 눈으로 배웠고 나름 자신이 있었다. (자만함이 이렇게 무서운 법이다.)


집에 도착했다. 수술하러 가던 날 새벽에 정리한 그대로 거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4월 초는 아직 조금 쌀쌀했다. 그래도 집에 왔다는 생각에 왠지 기분이 좋았다. 속싸개에 폭 싸인 미드미를 더 단단히 안았다. 뭔가 달라짐을 느꼈는지 꼬물거렸다. '미드마, 여기가 우리 집이야.'


새로 꾸민 미드미 방에 들어갔다. H가 벽에 A4용지로 프린트한 투박한 글귀 몇 개를 붙여놓았다. '미드마, 랭아 집에 온 걸 환영해!' 어젯밤 혼자 끙끙거리며 붙였을 생각을 하니 괜히 웃음이 났다. 미드미를 침대에 눕히고 조심히 문을 닫고 나왔다. 손을 씻고, 조리원에서 보고 배운 대로 분유를 준비했다. 머릿속으로 백번도 넘게 시뮬레이션했던 터라 분유 테이블, 기저귀 갈이대 준비를 훌륭히 해냈다. 으쓱했다.


하지만 삼십삼년 내내 그랬듯. 쉬운 건 하나도 없었다. 난관은 밤부터 시작됐다. 집에 돌아와 잠시 꼬물거리다 푹 잠들었던 예쁜 미드미는 어디 간 걸까. 신데렐라도 아니고 열두 시가 되더니 새로운 미드미가 깨어났다.

'으앙!!! 으앙!!! 내가 미드미다!!! 으앙!!!!!'


깜짝 놀랐다. 딱 열두 시를 기점으로 그녀가 마구 깨어나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울어댔다. 우유를 충분히 주고 기저귀도 갈아 주었는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추운 걸까 더운 걸까? 습도가 맞지 않는 걸까? 온갖 생각을 다 했다. VIP도 이런 VIP가 없었다. 미드미를 안고 어르고 달랬다. 내일 출근해야 할 H가 신경 쓰였다. 미드미의 울음소리 때문에 못 자고 출근하면 피곤할 텐데.라는 생각에 미드미를 안고 거실을 몇 번이고 빙빙 돌았다. 위 아랫집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혹시라도 미드미 울음소리에 잠 못 들면 어떡하지.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새벽의 골목을 처음으로 보았다. 불이 거의 다 꺼진 서울의 새벽은 낮의 치열함과는 또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를 고단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평안히 쉬는 밤이었다. 칠흑같이 어둡다는 표현은 대체 어떤 느낌일까 생각했다. 곳곳에 가로등이 환하게 켜져 길은 꽤 밝았다. 그 새벽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미드미를 안고 근 다섯 시간 동안 중얼중얼 이야기를 했다. '미드마,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난 그동안 좁게 살았나 봐.'


푸념도 하고, 자장가도 불러주고, 최선을 다해서 어르고 달랬다. 저 멀리 동이 터오는 게 보였다. 살면서 처음 보는 일출이었다. 밤을 새웠다. 눈이 뻐근했다. 정말이지 너무 졸렸다. 시뮬레이션에 없던 일이었다. 생각해보지 못한 변수였다. 그랬다. 그녀는 낮에 자고 밤에 깨는, 철저히 낮밤이 바뀌어버린 아가였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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