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ng Sep 25. 2017

13. 산후우울증(1)

미세먼지가 가득한 5월의 어느 날. 요즘 날씨 참 별로다.라고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지난밤에도 역시나 잠을 설쳤다. 익숙할 법도 한데 오늘따라 신경질이 났다. 아, 내가 잠을 잘 못 자서 그런 거겠지.

비 소식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수술자국이 아팠다. 제왕절개 후 습관적으로 아랫배를 만지는 습관이 생겼다. 켈로이드 피부는 이번에도 예외 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수술 직후엔 분명 실오라기보다 더 얇은 나름 예쁜 흉터가 생겼었는데 어느새 꽤 큰 흉터로 부풀어 있었다. 과장 좀 보태서 마른 지렁이 같은 모습이랄까. 손가락 끝으로 흉터를 더듬어 보았다. 딱히 날씨때문이 아니더라도 아직 아랫배가 많이 아팠다. 앉았다 일어날 때 마다 통증이 있어 쉽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통통한 일자 흉터를 손가락으로 자세히 더듬어보면 그 아래로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스티치가 느껴졌다. 하나 둘 셋 넷... 꼼꼼하게도 박았다.


역시 아침은 먹지 못했다. 나보다는 미드미의 아침이 중요했다. 꽤 익숙한 손놀림으로 분유를 타고 보채는 그녀를 포근히 안아 젖병을 물렸다. '미드마, 넌 좋겠다. 이거 하나만 먹으면 배가 부르잖아. 나도 그랬음 좋겠다.'


수유를 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침을 시작했다. 청소를 좀 해보려는데 그노무 미세먼지가 신경 쓰여 문을 열수가 없었다. 차라리 걸레질을 하는 게 낫겠다 싶어 습관처럼 항상 사용해오던 일회용 물걸레를 집어 들다 문득 화학약품이 가득한 청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 살 땐 한 번도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련하게 걸레를 빨았다. 무릎을 꿇고 걸레질을 하다 괜한 울화가 치밀었다.


그래, 신선한 마음으로 빨래를 하자. 빨래통을 확인했다. 그 전엔 일주일에 한 번 세탁기를 돌렸다. 야근하고 돌아와 밤에 빨래를 할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 하지만 이젠 그럴 수가 없었다. 미드미는 자주 토했고 덕분에 옷도, 손수건도 매일 빨아야 했다. 빨래를 삶았다. 손수건은 세탁기의 삶음 기능을 이용하기 꺼림칙하여 불 앞에서 뒤적뒤적 삶았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미드미가 앵- 하고 울어댔다. 잠깐 아가를 어르고 달래고 돌아와 보니 가스레인지가 엉망진창 거품 밭이었다. 아 젠장.


뭐라도 좀 먹어볼까 싶어 냉장고에 가까이 가다 멈췄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아가가 깰 것 같았다. 그래, 먹는 건 중요한 게 아니지. 차라리 대충 먹고 나도 좀 쉬자. 미드미가 깨는 건 너무 무서워.라는 생각에 선반 위 과자를 집어 들었다. 초코파이 두 개를 우적우적 먹었다. 비닐 뜯는 소리가 무서워 문을 꽁꽁 닫고 베란다 저 멀리까지 가서 마치 몰래 먹는것처럼 우적우적.


초코파이 두 개를 먹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얼마나 급하게 먹었던지 입가에 초콜릿이 묻어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드라이로 자연스러운 인공미를 주었던 앞머리는 실핀으로 고정돼 한올도 남김없이 머리 위에 붙어있었다. 미드미가 백일쯤 되니 머리카락이 정말이지 어마어마하게 빠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고 나면 머리가 시원할 정도로. 이러다 대머리가 되면 어떡하지? 라는 상상을 하며 머리를 질끈 묶었다. 엄지와 검지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머리숱은 예전의 반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입고 있던 파란색 티셔츠가 보였다. 어깨엔 하얀 토자국이 얼룩덜룩 묻어 있었다. 반팔 소매에도 얼룩덜룩. 순간 또 배가 욱신 아파왔다. 배 위에 손을 얹었다. 아직 빠지지 않은 배가 볼록했다. 아니 볼록이라는 단어는 너무 귀엽다. 부우울루우욱 했다. 배를 보며 늙은 호박처럼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튼살크림이며 오일이며 정말 열심히 발랐는데. 허무했다. 돌돌이 안경까지 장착한 모습이 너무 초라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12. 낮저밤이(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