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어렵다고?

- 공부가 싫지만 잘하고 싶은 당신에게

by 난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공부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빠르면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교육적(?) 태교를 받게 되고, 출생 이후에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공부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전에 아는 오빠가 첫 조카가 태어났다며 선물로 신생아 뇌발달 프로그램 비용을 댔다고 했다. 20년 전이었는데, 비용이 200만 원이라 꽤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기의 눈에 초점이 맞기 시작하면 바로 엄마의 책육아가 시작된다. 그림책, 동화책은 기본이고 영어 원서를 읽히기도 하고 집에는 영어 동요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방문 미술, 패드 학습지, 영어, 태권도, 바둑, 주산, 줄넘기, 피아노, 바이올린, 수학, 사고력 수학(?) 등등 놀면서 배운다고 착각하는 사교육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초, 중, 고 내내 반에서 90프로의 아이들이 영, 수 학원을 다니는데 등급과 성적은 나뉜다. 공부를 잘하는 애랑 아닌 애는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상관없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성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바보가 아닌 이상 성적이 좋은 아이들에게 비치는 스포트라이트를 못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재능이 있고 기질과 특성이 다르고, 나중에는 사업도 하고 창업도 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겠지만 적어도 학교 다니는 동안만큼은 그놈의 공부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성적으로 평가되는 공동체 안에서 자존감과 자존심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가면 또 공부를 해야 하고, 직장을 얻으려면 취업 시험을 위해 또 공부를 해야 하고, 취업을 해도 자리를 지키려면 또 공부를 해야 한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거나 창업을 하려 해도 그 분야에 필요한 자격증도 따야 하고 지식이 필요하니 공부는 필수이다.


세상이 좋아져서 초등학교 가면 색연필도 주고 스케치북도 다 준다. 공부에 필요한 도구가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도 내가 공부하고 싶어서 학원에 가겠다 하면 허리가 휘어져도, 빚을 내서라도 학원비는 마련해 주신다. 부모님 지원을 못 받으면 지역아동센터를 비롯하여 나라에서라도 도와준다.


즉, 공부만 하면 된다.


공부 방법에 대한 영상이 넘쳐나고, 입시에 성공한 엄마들의 간증들도 넘쳐나고, 학습법과 두뇌 계발에 관한 책도 홍수를 이루는데, 왜 공부를 못 하는가. 아니, 왜 이렇게 공부가 하기 싫을까? 공부만 잘하면 나도 어깨가 올라가고, 우리 부모님은 정말 행복할 것 같은데 말이다.


내가 공부를 잘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9살이 되던 해였다. 90년대 초반, 아동의 인권 따위가 별로 존중되지 못했던 교실 안에서 약 60명의 아이들이 생활을 했다. 당시 월말 고사를 보고 나면 선생님은 전 과목 올백 맞은 사람부터 시작해서 1개 틀린 사람, 2개 틀린 사람 손 들어봐~ 하셨다. 2학년 짜리들한테 매 달 시험을 보게 하는 것도 못 할 짓인데, 성적순으로 아이들을 대놓고 나열하니 매 달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2학년 때 친구와 나눈 대화가 기억나는데, "너 전체에서 몇 개 틀렸어? 나는 8개나 틀렸어." 이런 식이었다. 문제를 못 풀면 교실 앞에 나와 무릎 꿇고 손 드는 벌도 받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잘해야겠다고 단단히 결심했다. 이후 전학을 가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전 과목 올백을 맞던 날, 엄마는 나를 안고 마당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것은 어린 나에게 정말 황홀한 순간이었다. 엄마가 그렇게까지 기쁨을 표현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자, 공부를 잘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과연 순순히 그렇게 되었을까? 공부가 마음만으로 된다면 어려울 게 있을까. 나는 그 뒤에 매 번 나 자신에게 실망해야 했고, 그런 나를 이겨내야 했다. 그 지긋지긋한 공부를 내가 좋아하게 되고, 공부를 잘하게 되었으니 결국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 있지만, 지금 이 순간 공부와 씨름하는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