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경험 떠올리기
우리는 언제부터 공부가 싫었을까?
매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학생은 공부가 재미있을까? 나는 엄마 뱃속에서 만들어질 때부터 공부 유전자가 없었던 걸까? 내 공부방이 없어서 공부하기 싫은 걸까? 학교 선생님이 마음에 안 들어서 공부하기가 짜증 나는 걸까? 과연 나의 공부는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걸까...?
공부라고 하면 우리는 책상에 앉아 읽고, 쓰고, 풀고, 점수화되는 학습을 떠올린다. 우리가 경험하는 학습은 학교나 학원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하염없이 듣고, 쓰고, 억지로 말하는 '참는' 것일 때가 많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못 알아듣는 영역이 넓어지고, 또 그걸 들키면 안 되니까 눈치를 봐야 되고, 그런 시간들이 쌓여 스스로를 공부를 못하는 사람, 공부를 좋아하지 않지만 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사람으로 치부하게 된다.
그러나 당신은 공부를 좋아한다. 좋아한 적이 반드시 있다.
대학교 첫 전공 수업인 '교육학원론'의 첫 수업을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한다. 교수님의 질문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당구를 가르치는 것도 교육이냐?" 지금은 고등학교에 당구대가 설치된 곳도 많고 당구 동아리를 운영하기도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당구는 담배를 문 학생들이 짜장면을 걸고 내기나 하는 오락거리의 이미지였다. 교육은 신성하고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근거 없는 확신을 가지고 교육학과에 진학한 우리들은 교수님의 이상한 질문에 눈만 껌뻑거릴 뿐이었다.
당구는 죄가 없다. 그것이 결론이었다. 교사가 되겠다고 모여든 천진한 모범 학생들은 당구 교육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써야 하는 첫 시험에서 죄다 C학점의 물결을 이루었었다. 20살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교육이라는 개념이, 나이 들어 애 둘을 낳고 나니 아주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두 아이가 세상을 배워나가고 공부해 나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 아이는 옹알이(?) 할 때부터 말수가 적었다. 표정도 별로 없고 움직임도 신중하고 느린 편이었다. 걸음마를 보통 돌 전후에 한다는데, 아이는 16개월이 되어서야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한 두 달의 차이가 매우 크다.) 걸음마 전까지는 내 옷자락을 꽉 붙들고 인간 껌딱지로 보냈다. 화장실 문만 닫아도 앙앙 울어대서 볼 일도 편하게 볼 수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나는 살기 위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무조건 나가서 두 시간, 세 시간 동네를 빙글빙글 돌았다. 유모차에 태우면 내가 아닌 '세상'을 구경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내 아이의 '눈빛'을 믿었다. 물끄러미 세상을 응시하는 그 눈빛을 보면서 틀림없이 똑똑한 아이일 거라고 확신했다. 땅에서 올라오는 풀과 꽃, 그 옆에 나비, 그 위에 비둘기, 하늘에 떠서 실려가는 구름도 보고, 사람들의 분주한 걸음, 아기를 들여다보는 환한 얼굴도 마주하면서 내 아이가 세상을 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아이가 만지고, 보고 듣는 모든 것은 아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공부였고 아이는 그것을 조금도 귀찮아하거나 싫어하지 않았다.
말을 배우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자기가 필요한 시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마, 마, 엄마", "맘마"처럼 자기가 꼭 써야 할 말부터 "다녀오셨어요"하는 말에 이르기까지, 아이는 쑥쑥 성장했다. 글을 배울 때 제일 자주 하는 말이 "엄마, 이건 뭐라고 읽어? 이건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였다. 10살이 된 지금은 학교 수업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는 읽고 쓴다. 그렇다고 이 아이가 책상에 앉아 착실하게 문제집을 푸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다. 책상보다는 침대나 바닥에 엎드려 흔한 남매 읽는 걸 제일 좋아하고, 용돈을 벌기 위해 한 장에 100원을 쳐주는 성경 필사를 하기도 한다. 물론 자기가 뭐 사고 싶은 게 생길 때만 한다. 문제는 이 아이에게 국어, 영어, 수학, 사회 등을 막 가르치고 싶은 나의 시커먼 욕심이다. 그 욕심을 누르고 지금까지 내가 아이의 공부를 위해 한 밑작업은 한 가지이다. '공부'라는 말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다. 워킹맘으로 살다 보니 놀아주거나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가 힘들었는데, 나는 엄마와 함께하고 싶은 아이의 갈증을 '공부'로 풀어 주었다. "엄마랑 공부할까? 우와, 이거 엄청 신기한 문제다. 어머, 이거 어떻게 풀지?" 하는 할리우드급 연기를 펼치면서 말이다. 다행히 순진한 첫째는 이 방법이 효과가 있어서, 엄마랑 뭘 하고 싶으면 책이나 문제집을 가지고 온다.
나는 아이가 공부에 대한 좋은 감정, 좋은 기억을 갖기 바랐다. 그래서 자신의 결심과 의지로 공부를 향해 나아갈 때, 억지로 끌려서 지긋지긋한 일을 한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으면 했다.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배우고, 숫자를 세며 즐거워하던 당신이 지금은 공부에 겁을 먹고 공부에 질려있다면, 당신이 적극적으로 잘 배워나가던 기억보다는 의무처럼 떠안은 과제를 해결한 경험이 훨씬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태어나 사람을 배우고, 세상 돌아가는 걸 읽고, 지식을 얻는 일은 괴롭기만 한 일이 절대 아니다.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희열에 빠져 날밤을 새는, 게임과 연애에 빠진 당신을 생각해 보라. 게임과 공부가 어떻게 똑같을 수 있냐고? 수학과 당구가 같을 수는 없다고? 축구에 필요한 기술과 야구에 필요한 기술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축구를 잘 해낸 경험이 있다면, 다른 운동에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당신을 괴롭히고 상처 입혔던 공부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보라. 그리고 그 기억에서 발을 옮겨 성장할 준비를 하는 게 어떨까?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이고, 내 인생의 전문가는 내가 되어야 한다. 배우고 공부해서 더 나은 자신이 되는 쪽이 좋지 않을까?